금성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은희경, <금성녀>, 『문학동네』, 2013년 가을호

by YONG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주인공 벤자민은 남들과 반대되는 생체시간을 갖고 태어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젊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젊어지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일 것이다. 소설 <금성녀> 속의 완규가 설명하는 노인들의 행동양식은 이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노인들이 복지회관이나 노인대학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SNS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예절, 풍습을 가르치는 모습들은 자신이 젊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이 욕망의 근원이 자신의 생에 대해 확인받고 싶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점점 희미해지는 나의 근원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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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인공 마리는 소설 내내 위에 그런 일반적인 노인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말한다. 요가대회 행사 출연료를 두고 경쟁이 붙은 노인들이나 윤의 태도를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마리도 결국 언니의 죽음 이후로 자신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TV를 보다가 언니와 함께 봤던 영화를 보고, 그 때를 추억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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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구석에서 찾은 세 권의 앨범에서 언니의 결혼식을, 가족사진을 보며 남편을,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 직전까지의 사진을 보며 그 때를 회상한다. 상자 속 편지 다발을 통해 첫사랑의 존재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이런 것들까지는 마리의 기억 속에서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상자 맨 아래에서 발견한 언니의 국민학교 시절 통지표를 발견한다. 그것은 당사자인 언니까지 잊어버렸을 아주 오래된 생의 증거였다.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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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마리가 완규와 현과 함께 언니의 장지를 하러 가는 짧은 시간의 흐름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속에서 마리의 시간은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함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마리가 기억해야할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 아는 사람이 많아진 그녀는 오빠와 닮은 완규를 통해 오빠의 생을 떠올리고, 현을 통해 언니의 생을 떠올린다. 현과 완규가 활자를 통해서만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1959년의 중요했던 일들을 마리는 음악 하나만 듣고 그 때 느꼈던 감정과 생을 떠올린다. 1959년은 현과 완규의 어머니가 태어난 해로 그들의 근원을 상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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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근원, 나의 근원을 찾고 싶은 욕구는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다. 고1 때까지 줄곧 이곳저곳에 옮겨 살았던 완규는 자신의 뿌리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J읍이라는 뿌리가 깊은 마리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도 그 이유다. 완규는 그녀를 통해 자신의 근원의 시간을 알게 되고 마리를 통해 자신의 엄마의 미래도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의 J읍은 마리의 근원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리는 이를 보며 다시 그 때를 기억하고, ‘변한 것보다는 아예 없어져버린 게 차라리 낫구나.’라고 말한다.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마리나 노인들이나 완규나 같다. 그들은 점점 자신의 근원이 희미해지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 확인을 받고 싶어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자신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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