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 <실수하는 인간>,『실수하는 인간』,문학과 지성사, 2012
“미안해. 실수였어.”
이 말에 대한 대답의 90%는 “괜찮아.”일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사람 중 몇퍼센트나 정말 괜찮은 걸까? 실수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100퍼센트 실수는 아닐 것이다. 이렇듯 ‘실수’라는 단어는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딘가 공허하게 만들고 가볍게 만드는 단어다.
소설 <실수하는 인간>속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실수라고 말한다. 콘돔이 찢어져 태어난 순간부터 그는 ‘실수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넌 실수로 태어났다.’, ‘내 인생의 오점이다.’ ‘실수투성인인 네가 큰 사고를 쳐서 감방에서 평생 썩게될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란 ‘그’는 청소년기까지는 '타인의 실수'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동생과 학대를 피해 숨어있는다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 '타인의 실수'는 아버지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부터가 자신의 실수였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 전부를 실수라고 여기게 되면서 ‘그’는 실수와 고의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이 설정은 소설의 구성, 표현방식을 독특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보통 전지적 작가 시점의 주인공의 심리나 행동은 독자가 알 수 있게 전개되는데 반해, ‘그’의 심리나 행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호해진다.
대표적인 예시가 ‘그가 새어머니를 죽였을까?’다. 그는 절대로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단정하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를 죽이게 된 일이나 무심코 식물을 죽이는 일 등의 힌트로 그가 새어머니를 죽였을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서 살인사건 보도 자료를 읽는 행위를 통해 ‘범인’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대한다.
‘실수하는 범인’과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두가지 방법을 선택한다. 하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실수로 점철된 자기인생과 그로 인해 목숨을 잃게된 이야기’로 소설을 써보려고 하지만 ‘아버지를 죽였다. 실수였다, 아니다 실수가 아니었다, 아니다 실수였다.’라는 문장만 반복적으로 쓰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실제가 아니라 문장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인생의 실패를 실수로 덮어 버리고 싶은 주인공의 욕망을 나타낸 것이다.
소설에서 여인숙 여주인도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석원의 실패를 덮어준 유일한 또 다른 존재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실수를 실패라 여겨 단정 짓는 순간(비상벨을 눌러 경찰을 부르는 순간)그녀를 목 졸라 죽인다. 여태까지 실패를 실수라는 명목으로 덮어 자기부정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말이 아쉬웠다. 그동안 ‘그’가 철저하게 실패를 덮는 과정을 표현한 것에 비해 결말에서는 너무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