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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Dec 22. 2015

주문에 걸린 듯, 모스타르

동떨어진  그곳,  그곳을 잇는  모스타르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물다섯 번째

_동떨어지다. 그리고 다시 잇다.

2014. 10. 09

여태까지 우리는 많은 콘텐츠 속 간접체험을 통해 일종의 로망의 도시를 실현하는 여행을 했었다. 그럴 때면 생각했던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고, 상상보다 좋았거나, 별로였거나로 감정의 감흥이 나뉘곤 했다. 우리에겐 모스타르가 그랬다. 그런데 어떤 이미지도 없는 나라. 들어본 적 없는 도시. 그래서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을 그런 동떨어진 유일한 도시가 한 곳 있었다.


모스타르 Mostar

주문에 걸린 듯이라는 타이틀은 그래서 지었다.  가려하지 않았으나, 루트를 짜다 보니 가게 되었고, 떠나기 전까지도 큰 흥미가 없었지만, 꽤나 다른 풍경이 펼쳐졌던 곳. 또 하나의 이유는 도시 이름이 마법주문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타르타르 모스타르.(앞의 타르타르-는 그냥 내가 붙여본 것이다.) 공통점은 모르겠지만 왠지 아라비안 나이트가 떠오르고, 열려라 참깨를 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어떤 편견도 로망도 없었던 곳에서 발견한, 유럽과 '동떨어진' 그 모습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첫 번째,
뭐지, 이 한국적인 느낌은?

 크로아티아의 도시 간 이동은 대부분 버스로 이뤄진다. 위치 상 대륙 끝에 두브로브니크가 있고, 얇고 기다란 크로아티아의 땅 특성상 모스타르를 지나야 스플리트로 갈 수 있었다. 물가도 싸겠다 그야말로 잠시 들러가던 도시였다.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렀는데, 익숙한 한글이 보였다. 




  

그런데 그 익숙함은 모스타르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처음부터 뭔가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문이 우리를 기다렸고, 마치 그 문을 열면 우리나라의 한옥이 있을 것만 같았다. 뭐지.. 이 나라..?


두 번째,
그렇다고 유럽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풍경

아마 우리가 터키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곳이 더 생소하게 다가온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 같았다. 이곳은 터키의 통치를 받아서 그런지 TV로만 봤던 터키의 풍경이 떠올랐다. 워낙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 곳이라, 구경해야 할 핫스팟 중 하나인 시장은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그동안 유럽의 시장을 다니면서 보지 못했던 어딘가 동양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무늬들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세 번째,
전쟁의 흔적

모스타르의 명물인 다리. 네레트바 강 바로 위 다리를 지켰던 "다리 파수꾼들"을 뜻하는 mostari로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니, 명물은 명물이다. 가장 이곳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는 곳에서 바라본 다리는 두 마을을 잇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전인 1993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다리와 옛 도시들이 파괴되었고, 후에 다리를 재건했다고 한다. 이 다리를 건너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데, 대리석으로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히 걸어야 한다.

막연하게 세상 모든 전쟁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만 이뤄진 줄 알았다. 물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은 늘 있었지만, 피부에 와 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과 93년이면 내가 3살 때이며, 건물 곳곳이 파괴된 자국을 보자, 처음으로 전쟁이 와 닿았다.

네 번째,
전통음식을 먹다

내가 왜 이유 없이 아라비안 나이트가 떠올랐는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알 것 같기도 하다. 전통시장의 물건들에 이어 호스텔 호스트가 추천해 준 전통 음식점을 찾았는데, 뭔가 허접한 마네킹이 우리를 반겼다. 마네킹 종류도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식당 앞 마네킹이 아니라 왠지 의류 쇼핑몰에나 서 있을 것 같은 마네킹이었다.  

마법의 물약 통처럼 생긴 물약은 약이 아니라 술이다. 이 곳의 전통 술로 식전 주로 나왔다. 도수가 꽤 센 것 같았다. 속 끝까지 아주 뜨끈뜨끈 했으니, 이 음식도 처음 나왔을 때 비주얼이 무척이나 친근했다. 맛도 친근해 잘 먹긴 했지만, 또 먹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난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인데, 이 식당에는 손님들 다리 사이로 흘린 음식들을 먹는 고양이들이 네 마리 이상이 되었다.  한두 마리 정도는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아주  정신없이 돌아다니니,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전통 음식이라 할 만한 메뉴를 먹어보지 못했는데, 하루 머물면서 꽤나 알차게 챙겨 먹은 것 같다.

이 곳은 아무리 봐도 비슷함의 탈을 쓴 여러 나라가 뒤섞인 느낌이다. 건축 양식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다. 당연히 우리가 아는 그 맛의 피자겠지 하고 먹었는데, 전혀 다른 짠맛(?)이 났다. 사라예보 맥주가 있어서 먹었는데, 맥주라도 먹어서 다행이다. 다음날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먹은 파이는 시금치 파이와 감자 파이였다. 감자 파이는 우리가 아는 그 맛이 맞았지만, 생전 처음 먹은 시금치 파이는 내 입맛에는 안 맞는 걸로. 유럽 사람들은 빵에 시금치를 많이 넣는 것 같은데, 번번이 실패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먹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기억 속에 그렇게 좋은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어떤 인상도 없던 공간으로의 여행은 분명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익숙한 듯 다가왔다가 전혀 색다르게 마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 서로를 잇는 다리를 재건한 것처럼, 내게 동떨어져 있던 나라는 어느새 그 곳을 감으로써, 기억 속 소중한 여행지 중 한 곳이 되었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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