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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Nov 27. 2015

지상낙원, 두브로브니크(2)

두브로브니크의 플레이리스트(2)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물네 번째

_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2014. 10. 08
두브로브니크의 새벽

풍경이 아름다운 여행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꾼다. 해가 뜰 무렵, 쨍쨍한 오후, 해가 질 무렵, 자연이 깜깜해지고 나면, 가게와 집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며 내는 불빛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번을 봐도 익숙한 듯 새롭다. 유럽 여행지 중 가장 그런 곳이 잘 드러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두브로브니크일 것이다. 해가 막 뜰 무렵 우리는 세수도 안 하고 숙소 앞 항구로 나왔다.  밤늦게까지 북적이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 한 명 없는 적막은 공포였다면, 이 곳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온함이 느껴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성벽 투어

한 낮의 성벽 투어. 10월이라 선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러나 해가 하늘 정중앙에서 가장 쨍쨍할 때, 가장 아름다운 곳이 있다면 바로 성벽 투어를 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얼굴이 익어가도, 성벽 투어가 힘들지 않은 건 두브로브니크를 멀리서도,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크로아티아는 사진 속처럼 밖에 빨래를 많이 걸어두는 집이 많다. 저기에 어떻게 널어두나 했는데, 창문에서 저 줄을  잡아당겨 널고 수거하는 방식이란 것을 숙소  주인아주머니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가게와 가게 사이 골목들과 두브로브니크의 전경이 교차되어 보인다. 그 풍경 속에는 사람 사는 일상도 있고, 자연과 전쟁이 남긴 흔적도 있고,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도 있다. 


이 곳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넘쳐 나 오히려 서로 민망할 정도라 암묵적으로 서로의 눈길을 피하곤 한다. 오. 렌. 지. 쥬. 스. 맛.있.어.요 라는 정확하지만 어설픈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 주인들을 볼 수 있다.


숙소 주인의 추천 스팟! 
로크룸 섬

구항구에서 배를 타고 조금만 가면 '로크룸'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생태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섬으로, 공작새가 뛰어다니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런데 외국 사람에게 여행지를  추천받으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어떤 풍경이 우리에게 다르게 느껴질까라는 점이다. 사실 이런 푸릇푸릇 울창한 풍경은 한국에서, 그것도 제주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심지어 제주도가 더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가 갑자기 익숙하게 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추천해준 사람에게 제주도를 추천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누워서 쉬는 것만큼은 진짜 편안하다. 영국에서 공원에 놓여있는 의자마다 혹시 여기 앉으면 돈 내는 거 아닐까 전전긍긍하던 우리는 이곳에서는 맘 편히 누워 쉴 수 있었다. 섬  중간중간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옷을 챙겨오지 못한 우리는 아쉽게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우. 연. 히. 맛집을 발견?! 


여행서를 보면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여행 맛집. 검색해서 가는 것보다  그냥 그 날 느낌 오는 대로 들어가요. 돌아다니다 보면 현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그런 골목에 맛집이 있거든요? 그런 곳이 진짜 맛집이죠!"


멋모르는 나는 정말 다들 그런  것처럼 그렇게 우연히 맛집을 잘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위의 말에는 여러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유럽 관광지에서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서양인들이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식당 밖에서 어떻게 확실히 구분하냐는 거다.

둘째, 설령 그런 골목에 있는 맛집에 들어갔다고 치자. 메뉴판을 받았다.  그림은커녕 영어도 없을 확률 99%다.

벌써 여행 마지막 나라 크로아티아. 물론 가이드북의 유명 맛집들은 실제 맛있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검색해서 찾아가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간 여러 레스토랑을 시도했지만 음... 그냥 그랬다. 매일 매일 삼시 세 끼를 어디서 뭘 먹느냐가 그날 최대의 난제였다. 이날도 두브로브니크 골목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면서, 저녁 먹을 곳을 헤매고 있었다.

그 순간 2인이 마주 보고 앉을 정도의 아주 좁은 골목의 'DALMATINO'라는 작은 식당을 발견했다. 저 불빛 하나만 의지해 먹는 곳이었다.

메뉴판에는 마치 코스 요리로 고를 것처럼 되어있으나, 각각 다행히 단품으로도 팔고 있는 것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하다는 칼라마리(오징어) 튀김과  난생처음 오징어 먹물 리조또를 먹었다. 프랑스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먹었던 레스토랑보다 훨씬 맛있었다. 심지어 스플리트에서 가장 유명한 칼라마리 튀김집보다 훨씬 맛있었다. 처음으로 인터넷에도 가이드북에도 없는 맛집을 발견한 것이다. 어쨌든 여행이 끝나기 전에 이런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어서 내심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여행서처럼 우연히 그런 맛집을 만나게 될 거라고 단정 짓지 못하겠다. 그냥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플레이리스트(2) 
Mujer contra Mujer - Mecano

1편에서도 나왔던 Mecano의 Mujer contra  Mujer이라는 곡이다. 평소에도 음악을 들을 때 가사는 거의 듣지 못하고 멜로디만 듣는다. 그래서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의 음악을 들으면 더 기분이 묘해진다. 사람의 목소리도 멜로디를 내는 악기 소리 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브로브니크의 마지막 밤에 무척 잘 어울리는 노래다.


휴양지인 이곳은 자연이 비추는 불빛도 아름답지만, 사람이 내는 빛 역시 조용하고 아름답다. 곳곳을 바라봐도 지쳐 보이는 사람 하나 없다. 집 없는 걸인이나 집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 평온할 수 없어서 오히려 너무 완벽하게 아름다운 낙원의 모습만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현실을 탈출했다면 이 정도 극치의 여행지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Story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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