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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Feb 19. 2016

엔딩은 크로아티아(1)

흥겨운 스플리트, 잔잔한 바다 오르간 자다르, 그리고 신비로운 플리트비체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물여섯 번째

_엔딩을 앞두고


매거진에서 크로아티아 여행의 시작은 두브로브니크였지만, 사실 우 여정의 시작은 자그레브였다. 또한 크로아티아의 마지막이자 유럽여행의 마지막 관문 역시 자그레브였다. 대부분의 루트가 밑에서 올라오든, 위에서 올라오든 둘 중 하나이건만, 어쩌다보니 우리는 한 나라의 처음 시작과 끝맺음을 같은 도시로 하게 된 것이다. 우선 자그레브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뤄두기로 하고.


흥겨운 분위기의 그곳, 스플리트
2014. 10. 10 - 2014. 10. 11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의 도시적인 면모를 보았고, 두브로브니크에서 풍경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꼈다면, 스플리트는 그 중간 애매한 느낌이었다. 두브로브니크를 너무 일찍 봐버린 탓일까.  그래도 흥겨운 사람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천정에 뻥 뚫린 구멍안에 하늘이 색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이 구멍에는 색만 채운 것이 아니다. 이 곳에서 시간마다 작은 노래 공연이 열리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구멍을 또 채우는 것이다. 울려퍼지는 사람의 목소리에 지나가던 조그만 길강아지도 앉아 음악을 듣는다. 마치 이 건물의 주인처럼 거만하게 활보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스플리트

사실 낮에는 스플리트의 건물들이 다른 유럽 건물들에 비해 특별히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플리트에도 밤이 내리면, 흥겨운 음악과 형형 색색의 불빛이 거리를 물들인다. 낮에는 유적들을 구경하느라 걸어다니는 사람들로 빼곡했던 것과 다르게 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여유롭게 둘러 앉아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광장에 둘러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여자 아이. 엄마한테 같이 추자고 끌어 당기지만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흥이 나 혼자서 춤을 춘다.


자연이 연주하는 오르간, 자다르   
2014. 10. 12

알프레드 히치콕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며 극찬한 자다르. 내가 아는 자다르에 대한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내겐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히치콕의 영화보다 떠오른 영화가 있으니 바로 영화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영화 내용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유지태의 역할이었다. 한국적인 풍경이 내는 소리를 담아내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풍경을 담아내는 촬영기자들은 많이 봤지만, 소리를 담는 것은 많이 못봤다. 점점더 오감을 만족시키는 영상물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각각의 감각은 무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함께 연주하는 소리가 있으니 일명 바다오르간이다.

바다 오르간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궁금했던 우리는 소리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후에 알게된 바로, 바다오르간은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가 2005년에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파도가 계단에 부딪쳐 그 진동이 안에 있는 파이프로 전달되면 계단 밑에 있는 구멍으로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울리는 원리라고 한다.  파도의 세기가 다르니 정박도 없고 강약도 없다. 작곡한대로 연주할 수도 없는 악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디어의 힘은 확실히 강력했다. 자그레브, 두브로브니크, 플리트비체, 스플리트에 비해 자다르에는 한국 여행자가 별로없었다. <꽃보다 누나>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 사람도 별로 없고, 건물도 띄엄띄엄 있었던 이 곳은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심지어 주말에 방문한 터라 골목 문을 닫는 상점들도 많았다. TV 속 스플리트의 화려함을 동경하여 크로아티아에 왔지만, 오히려 몰랐던 자다르가 더 큰 인상을 주는 도시였다.


머피의 법칙, 플리트비체
사진이 아름답다고,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2014. 10. 13

지금부터는 사진과 여행기가 따로 노는 파트라고 볼 수 있겠다. 사진이 더욱 아름다울수록 우리의 고생담은 심화되었으니...


첫번째, 플리트 비체로 떠나는 아침.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자다르 숙소의 호스트는 열쇠를 받으러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받으러 온다고 해놓고 연락 두절. 전화 했더니 늦게 일어났으니, 근처 카페에 열쇠를 맡겨두라는 당황스런 답변. 다행히 시간은 세이브.

두번째, 플리트비체에서 당일치기를 할지 1박을 할지도 정하지 못한터라 그날의 숙소도 없는 상황. 버스에서 내리면 숙소가 있다는 말만 믿고 왔다. 그런데 엉뚱하게 입구2에 내려서 숙소와 락커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다시 입구 1로 가서 짐을 맡기고 셔틀을 탔으나 이상하게 산 중턱 어디쯤에 내려주는 것이었다.

세번째, 우리는 흙으로 덮인 산길을 각각 캐리어 하나씩 끌고 올랐다. 아주 친절한 표지판 덕분에 약 1km나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덥고, 힘들고, 극악의 상황이었다. <꽃보다 누나>에서 너무 아름답다며 여배우들이 나풀나풀 걸어다니던 그 곳이 이곳이 맞는가 싶었다.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관광객들. 하나같이 쟤네는 왜 저러고 가고 있지 하는 눈치다. 동지 하나 없이 우리만의 힘들고 쓸쓸한 여정인 것이다.

그래도 짐에서 해방된 채로 돌아본 플리트비체는 정말 맑고 아름다웠다. 비록 땀은 흘렸지만 맑은 날씨 덕에 뭘 찍어도 그림이 되는 풍경을 담아올 수 있었다.

플리트비체는 영화 <아바타>의 배경 모티프 장소로 유명하다. 이제는 당연하게 3D 영화가 보편화 되었지만, 당시 <아바타>를 3D로 보는 것은 획기적인 경험으로 3D 영화의 붐을 일으켰었다. 난 그 때 왜 그랬는지 집 근처에 있는 작고 후진 영화관에서 2D로 한번 본게 다였지만 말이다. 진짜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영화 메이킹을 보고 더욱 놀랐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훨씬 자연스러운 움직임부터 감정이 담긴 표정까지 볼 수 있었다. 문득 플리트비체의 밤풍경이 궁금해졌다. 가로등 하나 없으니 엄청 무섭겠구나.

나무가 부러지면 부러지는 대로 두고, 새로 물길이 흐르면 사람이 다니는 길목을 바꾸는 등 최대한 자연에 손을 대지 않게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구불구불 징검다리를 건너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네번째, 우리의 고생이 이것으로 끝났을 것 같은가. 그건 큰 오산이었다. 플리트비체를 나오니 이미 늦은 오후. 아직 우리는 숙소도 못 구했다. 플리트비체에서도 숙소를 못 찾았는데, 라스토케에서 찾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와중에 버스조차 우릴 무시하고 지나쳤다. 라스토케까지 갔다가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를 것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예정보다 하루 일찍 자그레브로 돌아가기로 했다. 크로아티아의 첫날 묵었던 그 호스텔에서 말이다. 것도 첫날 숙박료의 두 배 가까이 물고.


엔딩을 앞두고

생각해 보면 여행과 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비슷하다. 첫 시작은 설렘, 기대감으로 가득하고, 엔딩으로 치닫을 수록 가장 큰 갈등 상황 하나쯤은 얻어오게 된다. 엔딩궁금할 정도의 갈등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자리잡곤 한다. 그러나 그 갈등이 벌어지기 전까지 계속되는 여정은 어딘가 노곤해지고, 감흥이 떨어지는 법.

그럴 때는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이미 TV로 익숙해진 풍경보다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으로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내게 전자가 스플리트, 후자가 자다르였다. 크로아티아에서 조금 더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싶다면, 자그레브 - 스플리트 - 자다르 - 플리트비체 - 두브로브니크가 좋을 것 같다. 첫 장면에 눈길을 끌어야한다면 반대 순서로 가면된다. 그러나 현실은 위에서 혹은 아래서 부터 차례로 올라가는 게 지리상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은 조금 다르게 자그레브에서 시작해 자그레브로 끝났다. 크로아티아라는 나라,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자그레브와 진짜 엔딩은 다음 편에 계속.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정말 오랫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글이 올라오지 않음에도 가끔 매거진을 찾아와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사이 저는 새로운 여행을 다녀오고, 긴 시간 방콕(일명 집에서 콕 박혀있기) 여행을 하느라 이제야 돌아왔네요. 그 전에 이 여행기를 끝마치고 가고 싶었는데 어느덧 해가 바뀌어 케케묵은 2년 전 여행기가 되었네요.ㅠ

그럼에도 계속 여행기를 쓰고 생각해서 그런지 여행을 또 가게 되더군요.


덕분에 유럽편 연재도 시즌2로 계속 될 수 있게 되었구요! 시즌 1은 다음편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여행의 기록들이 더 쌓일 생각을 하니 뿌듯하네요.ㅎㅎ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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