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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G Mar 07. 2016

엔딩은 크로아티아(2)

자그레브로 시작해서 자그레브로 끝나는 이야기

이야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스물일곱 번째

_여행의 엔딩

영화 속 오프닝이 떠오르는 한 컷.
2014. 10. 06 그리고 2014. 10.14

뜻하지 않게 유럽에서 제일 빨리 다시 오게 된 도시 '자그레브'. 처음 도착해서 2박, 다시 와서 2박, 총 머문 날로는 6일이라니 경유 개념으로 선택한 도시치고 오래 머문 셈이다. 크로아티아의 첫 설렘을 안겨주고, 아쉬움을 남기고 온 자그레브 이야기.


다시 오고 싶은 그곳들

우리 둘 다 자그레브에서 다시 오고 싶었던 곳으로 꼽았던 곳은 바로 '벨기에 와플' 집이었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벨기에 와플이라니. 후에 동생의 말로는 벨기에에서 먹어본 와플과 별 차이가 없었다더라.


이 곳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북적이는 시내와 달리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리고 다시 찾았을 때도 손님들도 별로 없고 조용했다. 잔잔한 라디오 소리와 와플을 만드는 할머니의 움직임 소리만 들리는 곳.


처음에는 여기서 엽서를 썼었고, 다시 와서는 그래 이 맛이야. 라며 고작 두 번 방문했지만 친숙한 느낌으로 기억 한 켠에 자리잡았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컷 2

굳이 두 번 보지 않아도 자그레브를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 모자이크 지붕. 가장 유명한 관광지 답게 사람이 많이 모이지만 그 앞 탑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말 별로 없었다. 흐린 날씨도 한몫했겠지만 다른 사람 한 명 없이 바라보는 느낌도 생소했다.


첫 장기 여행. 뭘 많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여행하는 중이었다. 그 날 저녁 집에서처럼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비정상회담을 봤을지라도, 새롭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는 법.


무계획 여행 스타트!

어렸을 때 가족끼리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 그때 우리는 가끔 '일단 가보자'라며 무계획으로 여행했던 적이 있었다. 자그레브도 볼만큼 다 보았는데,  여행의 마지막 하루가 남았다. 우리는 이날만큼은 무계획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일단 아침에 열리는 시장을 구경하러 갔다. 저렴한 식료품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는 귤 한 봉지를 샀다. 마치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귤 까먹는 것처럼 느긋하게 귤 까먹으먹으면서 시작한 여행!


의문의 CD 한 장과 한국 가이드북


여행하면서 여유가 된다면 꼭 해 보고 싶은 일이 세 가지 있었다.


첫째, 각 나라의 음반을 모으는 것

둘째, 그 나라 서점에서 우리나라 여행 가이드북을 보는 것

셋째, 그 나라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


각 나라의 음반을 모으는 것은 반쯤 성공했다. 이를 완벽히 수행하지 못한 데는 나의 결정장애가 한몫했다. 조금 다니다 보면 더 좋은 음악을 발견하지 않을까 미루다 정작 사려고 마음 먹으면 그곳을 떠나야 했었다. 그래서 여행의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날, 음반 가게에서 복불복으로 CD 한 장을 골랐다. 심지어 들어보지도 않고. 나혼자 정한 게임처럼 한국에서 들어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음반가게 옆에는 서점이 있었다. 모르는 글자와 내용들로 가득한 외국 서점에서 재미있게 서점을 구경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여행서 코너에서 KOREA를 찾아보는 것이다. 삼겹살 쌈 싸 먹는 것부터 당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생활 방식, 나도 가보지 못한 한국의 맛집. 언젠가 외국에서 출판한 우리나라 가이드북으로 우리나라를 여행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심심한 데 영화나 한 편 볼까?

드디어 세 번째,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가 이루어지나 했다.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시내 곳곳에 영화관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유독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 곳에서는 좀처럼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우리만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관을 찾아 헤매던 중 팸플릿 하나를 받았는데 바로 'ZAGREB FILM FESTIVAL'이었다. 우리가 떠난 며칠 뒤에 열리는 자그레브 영화제를 홍보하고 있었다. 이 나라, 영화를 보긴 보나보다.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 유일한 영화관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영화제와 무관하게 상영하고 있을 거란 예상을 빗나가고, 오히려 영화제 관련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테이블에 간단한 음식이 놓여 있고, 상영관 안팎으로 영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아마 영화제 프리뷰 비슷한 행사 중이었던 것 같다. 영화제도, 영화도 볼 수 없었지만, 내가 일 하고 싶은 직종에 모여있는 사람들, 정말 멋있다.   

 빛바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
MIMARA

아무리 무계획 여행이지만 우리가 가 보지 않은 곳은 없을까 검색하던 중 MIMARA 박물관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공짜라 우리의 일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중들에게 유명한 작품이 없는 이 곳은 오히려 독특한 인상으로 기억되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은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잘 꾸며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벗겨진 그림을 보존한 흔적도 없었고, 작품 배치도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심지어 작품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커다란 건물 안에 많은 그림을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의 엔딩
이제 집에 가자 - 장기하, <사람의 마음> 중

첫 여행이니만큼 뭔가 그럴듯하게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자신한테 보내는 엽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오글거리지만 참 진지하게 썼다.


음원 사이트의 최신곡으로 전부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새삼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우리의 상황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노래가 재생되었으니 바로 장기하의 '사람의 마음'이라는 곡이다.


우리 둘 다 이 곡의 가사를 듣자마자 동시에 빵 터졌다. 여행의 엔딩 삽입곡으로 손색없을 정도의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자 이제 슬슬 피곤하니까
집에 가자 배가 고파졌으니까
집에 가자 나는 정말 지쳤으니까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옮기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무겁기 짝이 없지만 일단 집에 가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자자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까
그냥 자자 오늘 하루도 길었으니까
그냥 자자 더 이상 생각할 힘도 없으니까
그냥 자자 내일 하루도 길 테니까

어찌 된 일인지 이불속에서 눈꺼풀을
깜빡 깜빡 깜빡 할 때 마다
졸음은 달아나지만 일단 잠을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 사람의 마음, 장기하


결국 동생의 편지만 오고, 내 편지는 분실되어 우리 집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누구는 여행하면서 뭔가 크게 깨닫는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여행은 생각을 하지 않는 상태, 아주 단순 하디 단순한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경험이 나를 깨닫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깨닫지 않아도 상관없다.


1년 같은 한 달이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게 많아졌다는 것. 거창하게 세웠던 프로젝트도, 외국 여행에서 상상했던 이벤트가 없어도 그냥 괜찮은 기분이다.'


- 여행 마지막 날 여행 일기 중에서



글. Storytraveller

사진. 동생님, Storytraveller


드디어 끝!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저는 또다시 비행기에 오릅니다.


시즌 2 COMING 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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