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두번째 리뷰글은 책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다.
한번쯤 좋은 디자인이 무엇일지 궁금하고 고민해 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같은 과 친구의 추천 덕분이었다. 그간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던 친구는 그 하나의 해답을 박현택 작가의 [보이지 않는 디자인]에서 얻었다고 한다. 대체 이 책이 뭐길래. 친구뿐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고민할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과 두근거림으로 책을 펼치게 되었다.
총 2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박현택 작가가 디자인에 관해서 본인의 고민과 사색을 일기처럼 쓴 책이다. 작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란 고민에서부터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전문가가 쓴 책인 만큼 처음엔 ‘내용이 어려우면 어쩌지’란 걱정도 들었지만, 읽다보면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작가는 독자에게 친절히 하나하나의 예시를 들어주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포스트잇의 개발 배경, 이슬람 국가의 화장실 표식, 쓰레받기의 각기 다른 모양새···등 다양한 주제와 예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함께 생각할만한 화두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그 중에서 나는 ‘슈퍼노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슈퍼노멀(super normal)이란 아무렇지 않게 매일 사용하는, 너무도 평범해서 특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던 물건들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비롯된 용어다. 디자인을 단순히 외형적인 미로만 볼 것이 아닌 삶에 기반을 둔 자연스럽게 숙성된 가치로써 봐야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디자인은 결국 전체 맥락을 깨트리는 좋지 못한 디자인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좋은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시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들었다.
중구에 있는 서울주교좌성당은 도합 100년에 걸쳐 완성한 성당으로, 당시 우리나라 주변 환경에 맞춰 제작한 건물이다. 성당 기둥에는 한옥의 모임지붕형식에 얹은 짙은 회색 기와를 볼 수 있으며, 이 기와가 바로 로마네스크과 한옥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1917년 이 성당을 지을 당시 마크 주교와 건축가 아서는 훗날 한국교회건축의 모범이 되는 건물을 짓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질적인 서양 건축양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전통양식과 적절히 섞어 건물을 디자인하였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조선인, 영국인, 일본인이 함께 어울려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성당은 미완성된 체로 방치되었고, 1996년에 다시 완공하기 위해 한국의 건축가 김원이 이 성당의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김원은 현대 건물을 만드는 건축가로 유명했지만,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성당의 본래 디자인을 따르게 된다. 그 역시 주변의 환경을 위해 본래의 취지에 따른 것이었다. 마크 주교와 건축가 아서, 그리고 건축가 김원에게는 눈에 띄는 렌드마크나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욕심과 의도를 찾을 수가 없다. 작가는 이렇게 만들어진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야말로 우리 주변의 공간과 사물 속에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가치라고 일컬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난 대학 생활동안 작가가 말하는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그러니까 항상 눈에 보이는 디자인을 해왔고 누구보다도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자 노력했다. 그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게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야말로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은 충격에 가까웠다.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간 나도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해왔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디자인이 있었고 나보다 잘하는 디자이너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내 디자인이 살아남으려면 획기적이고 개성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책 제목에서부터 주장한다.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가치를 찾으라면서 말이다.
과연 내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었을까? 일상에 조화로운 것이었을까?
[보이지 않는 디자인]은 이러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내게 던져준다. 내 디자인은 매번 꾸밈의 기술이었다. 미술을 배웠던 사람으로서 가지는 습관 같은 거였다. ‘독특해야지, 조형적인 미가 있어야지. 구성 배치를 잘해야지.’ 그런 부담감들을 전제로 디자인을 해왔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대로 그런 생각들을 버리고 ‘일상의 양식’이 될 수 있는 디자인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100년에 걸쳐 지은 서울주교좌성당의 건축가들을 생각해보며 보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내가 뽑아본 책'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장점, 추천하고 싶은 인물, 추천도
장점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주제와 예시를 소개가 되어 있어 읽기 재밌다 / 이해하기 쉽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은?
디자인 전공생, 미대생, 기획자, 설계자, 디자이너
추천도
★★★★☆(별 5개중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