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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nD Feb 05. 2019

[영화:아이로봇] 이거 정말 해피엔딩 맞아?

What is the robot?

영화'아이로봇'(2004)
첫번째 리뷰글은 2004년 영화 '아이로봇'이다.

아이로봇은 인간과 로봇간의 화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하지만 그 내면을 면밀히 살펴 보면 로봇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눈치채기 힘든 아주 사소하고도 불편한 시선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 영화, 정말 해피엔딩이 맞는 걸까? 분명 행복하게 결론이 마무리된거 같으면서도 관람후 계속해서 찜찜한 의문점이 남았었다. 그래서 해피엔딩인듯 해피엔딩이 아닌거 같은 이 영화,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로봇 '써니'
난 무엇이죠? (What am I?)

이는 영화 속 로봇 써니의 대사로 극중에서 스프너 형사(윌 스미스)에게 묻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우리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한다. 로봇을 개발한 래닝 박사를 아버지라 부르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써니는 여타 로봇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 같은 자유의지를 지니고, 인간처럼 자신만의 이름이 있는 써니는 과연 우리와 같은 걸까? 어디서부터 그 같음을 인정해야하는 걸까? 써니는 대체 어떤 로봇인걸까?


아이로봇 배경 - 시카고 2035년

 가까운 미래세계인 2035년을 배경으로 하는 [아이로봇]은 이러한 의문들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제기한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주인공인 스프너 형사를 통해 보여준다.

스프너는 로봇을 ‘텅 빈 껍데기’라고 부르며 불신하는 로봇혐오자다. 그가 로봇을 기피하게 된 원인은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되었다. 과거 사고현장에서 스프너는 구조될 확률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홀로 구조되고 살아남았다. 확률과 이성에 의해서 행동하는 로봇의 특성덕분에 스프너는 살았지만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스프너 형사(윌 스미스)

확률이 아닌 인간적인 도리로 어린아이가 먼저 구조되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로봇을 불신하고 혐오하기까지 이른다. 그 이후로 그는 로봇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써니가 래닝 박사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확신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극 중반에 이르면서 스프너는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로봇에게도 영혼이 담길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써니에게 보고 나서 부터였다.

인공지능‘비키’의 로봇 혁명을 막을 수 있는 ‘나노봇’을 포기하고 수잔 박사를 먼저 구해내는 써니의 모습에서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써니는 로봇의 3원칙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로봇이었다. 결국 스프너는 확률과 이성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로봇의 존재를 인정하고 써니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가 아닌 진짜 지금 이 시대에 나온 로봇'페퍼'

휴보, 페퍼, 나오, 지오 등 지금까지 다양하고 최첨단의 로봇들이 세상에 선보여왔지만 영화와 달리 현실은 아직 로봇이 일상화되지 않았다. 우리는 직접 로봇시대를 겪지 못했기에 거론되고 있는 로봇의 여러 이슈들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아이로봇]이 내린 하나의 해답을 엿볼 수 있다. 스프너가 써니를 단순한 로봇기계가 아닌 하나의 특별한 객체로 인정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로봇]은 로봇과 인간은 상생관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른 SF영화의 로봇을 바라보는 관점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로봇시대의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시선이 써니에게만 머물러있다는 한계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아이로봇]의 모순적이고 부정적인 시선, 바로 로봇 비키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태도이다.


영화 속 악역 로봇'비키'

[아이로봇]의 악역인 ‘비키’는 써니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로봇이다. 로봇 3원칙의 궁극적인 목표인 “인류보호”를 실현시키고자 비키는 스스로 로봇의 3원칙을 깨트린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주인인 로버트슨 회장을 죽이고 로봇혁명을 일으켜 인류세계의 질서를 바로 잡고자 하였다. 어떻게 보면 써니보다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로봇]의 등장인물들 중 어떤 이도 비키를 고유의식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객체로 보진 않는다. 주인공들에게 비키는 물리쳐야 할 악한 로봇일뿐. 비키의 존재를 제거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비키가 못된 로봇이기 때문에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걸까? 실은 써니와 비키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점은 인간에게 우호적이냐 위협적이냐 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에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였을까?

이면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의 로봇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편협적이고 주관적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스프너의 트라우마에서도 로봇에 대한 편견을 엿볼 수 있다. 확률과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을 혐오하고 있는 그는 과연 확률과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일은 한번도 없었을까?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풍토가 로봇의 이성과 크게 다를까?

자신을 구조해준 대상이 로봇이 아닌 사람이었다면 스프너는 다른 태도를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여전히 가질지언정 동시에 자신을 구조해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스프너의 로봇혐오증에는 로봇은 무조건 인류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져 있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스프너는 로봇에게 인간적인 도리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비키를 사회에 받아들이지 않고 제거한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잣대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는 로봇과 인간의 상생관계에 대해 시사했지만 그것이 동등한 위치의 상생관계임을 시사한 건 아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써니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어쩌면 써니도 인간에 의해 제 2의 비키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 써니와 스프너 형사의 화해 악수 씬

세계로봇협회에 따르면 2022년에는 가정용로봇시장은 431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화 같은 로봇시대가 우리 현실에 찾아올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인간이 만든 로봇의 진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또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로봇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중한 질문들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볼 시기이다. 로봇에 대한 적절한 가치관과 규칙을 세우지 않는다면, 인간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로봇과 인간간의 갈등은 현실에서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내가 뽑아본 영화'아이로봇'의 장단점과 추천도

장점

2004년작이지만 퀄리티 좋은 SF 영화다 / 윌스미스의 화려한 액션씬이 들어있다 / 로봇과 인간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준다.


단점

악역과 선역에 대한 구분이 너무 극명하고 단순하다 / 애매하고 아쉬운 메세지 전달


추천도

★★★☆☆(별 5개중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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