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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an 29. 2023

환급

머니 이즈 백

 현대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돈이 란 건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 그리고 목표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밥을 먹는 것도 이동을 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심지어 편히 쉬기 위해 잠자리를 구하는 것도 심지어 재화를 벌기 위해 범죄를 저질러 나오는 벌금마저도 전부 돈이다. 물론 막말로 전부 구걸을 통해서, 혹은 잠자리의 경우엔 포기하고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것들은 전부 넌센스인 부분들로 돈이 란 건 현대 사회에서 필연적인 부분이다.


 어렸을 적 나는 부모님께 농담으로 노숙자가 꿈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정말 호되게 혼났는데 사실 여기에는 부모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개겨보고자 했던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마음만 편하다면 노숙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허나 나이를 먹어가고 어느덧 내가 30줄에 다다르자 노숙자는 정말 힘들고 좋지 못하단 걸 깨닫는 나이가 되니 어릴 적 철없던 내 답변이 한없이 미숙하고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문제는 정말 지금의 내가 사실 노숙자나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단 게 더 한심스럽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어나간다. 그중에는 적게 버는 사람도 혹은 천금만금을 버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든 성인이 되어 사회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는 너도 나도 할 거 없이 전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그렇게 돈을 벌다 보면 급여에는 차이가 존재하고 다른 사람들과 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며 결국에는 그것이 급을 나누는 계기가 되고 차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하지만 같은 페이를 벌어들인다고 해도 요식업계에 일하는 자영업자와 변호사가 같은 급이라고 취급하지는 않지 않는가? 더불어 페이도 다르다면 더더욱 차이는 벌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이 직업에 있어서는 사회적 명예와 지위라는 것도 포함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돈이라는 것은 사람의 차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는 현재 30대로 다달이 스터디카페 총무를 하며 벌어가는 40만 원이 전재산이다. 부가적으로 돈이 필요하다면 단기 알바를 뛰는 경우도 있지만 이걸로 나는 최대한 한 달을 버텨나간다. 내 꿈인 글작가라는 목표를 위해 희생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약 1년 정도 버텨왔던 거 같다. 하나 나도 회사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중견급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일했었는데 당시 그래도 페이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소위 대기업이라면 당연히 초봉이 4천이 넘고 5천 가까이 된다고는 하지만 일단 그 회사는 중견급이었고 당연히 보통 신입 초봉은 4천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찌저찌 4천 정도를 받았고 추가로 인센티브 등을 고려한다면 4천이 넘게 벌어들일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엔 코로나가 터져서 외부 술자리 등 돈 쓸 일이 더 없었고 그 덕에 나는 짧게 일하고도 꽤 큰돈을 남겼었다 물론 결국엔 이래저래 다 나갔지만 말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내 친구들도 씀씀이가 커진 것은. 나도 매달 통장에 200 가까이가 들어왔고 돈은 돈대로 나가지 않으니 한번 쓸 때 꽤 거하게 사용했던 거 같다. 내가 평균적으로 늦게 취업한 편이었기에 당연스럽게도 내 주변 친구들은 이미 어느 정도 돈이 모여있었고 그렇게 만남을 가지게 된다면 자연스레 비싸고 좋은 걸 먹고 여행을 떠나도 좋은 숙소를 잡는 등 전체적으로 씀씀이가 후해지게 되었었다. 그러나 중간에 나는 글을 쓰고자 퇴사를 결심했고 그렇게 모아둔 돈은 전부 투자를 했기에 내 휘하에 남는 금액은 고작 300만 원 정도였다. 다만 그것도 제주도 한 달 살기 경비로 전부 쓰고 나니 이제 남는 것은 얼마 없었고 간간히 알바를 한다면 어찌 저찌 1년은 버티겠다고 생각해 시작했었던 것인데 막상 또 살아가다 보니 돈 쓸 일만 생기지 벌어들이는 일은 적어 금방 금전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약속을 잡거나 나 혼자 돈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도 오히려 오랜 시간 아껴 쓰고 절약하던 습관 보다도 기분 좋게 쓰는 소비 습관이 자리를 잡게 되자 씀씀이가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설령 중요하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보게 되더라도 돈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 부담이 생겨버렸다. 물론 좋은 친구들은 내 사정을 알고 본인들이 더 내거나 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느끼는 부담감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만남을 갖는 것이 부담이 되었고 혹여 만나더래도 내가 먼저 선뜻 ‘야 싸게 싸게 놀자’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어느덧 연말, 연초가 되어 여기저기서 송년회, 신년회를 갖자 얼굴 한번 보자 연락이 오고는 있지만 불가피한 거나 혹은 나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전부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 참 골계스럽다.


 

 과거에 어느 작가의 결혼식 썰이였던가 기억이 나는 게 있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핵심 내용만 기억해 언급해 보자면 한 작가가 결혼을 하게 되어 당연히 청첩장을 돌리고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고 한다. 그중에는 고등학교부터 친구였나 어쨌든 오래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그 친구는 지방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었고 작가만 상경해 올라와 서울에서 식장을 잡고 결혼식을 진행했기에 그 친구가 식에 참여하려면 무조건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그렇게 식 당일날 그 친구는 당연히 올라왔지만 식장에서 얼굴을 마주치고 인사는 하지 못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방에 살던 그 친구는 너무 찢어지게 가난해 축의금을 낼 형편도 못되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기에 무리해기차표를 끊은 게 전부였고 차마 부끄러워 인사는 하지 못하고 식을 올리는 모습만 보고 축의금 대신 본인이 수확한 과일을 건네었다고 했다 한 통의 편지와 함께. 그 편지에는 결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가난한 자신이 부끄럽고 미안해 축의금 대신이지만 그날 아침에 수확한 가장 좋은 과일을 준다며 그렇게 마음만을 전한다고 이야기되어 있었다. 해당 작가의 입장에선 본인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래도 와준 것이 고마웠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한 것이 이 이야기의 끝이다. 멋진 이야기이기는 하다. 친한 친구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래도 상대방을 존중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다.


  허나 나는 이게 참 슬프게 느껴졌다. 해당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마치고 그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하고 마무리했으나 그 친구 입장에서는 참 비참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거 같다. 같은 동네, 같은 나이, 같은 학교를 나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왔지만 서로 직업을 가지면서 그리고 가정을 꾸리면서 점차 경제적인 격차가 벌어졌고 오랜 시간 보지 못했다고 했었다. 뭐 지방과 서울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가난한 친구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그래도 기사에 나올 정도의 작가였으니 어느 정도 수입이 있었을 텐데 그 친구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겠다 싶었다. 분명 만난다면 적어도 식사를 할 텐데 가난한 친구는 만 원짜리 국밥에도 벌벌 떨며 사 먹을 수도 있을 텐데 작가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와 식사 자리라면 좋은 걸 먹고 싶어 할 터이니 그런 걸 고려한다면 부담이 아니 될 수가 없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끼 식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일주일 식비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간혹 그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친한 친구라매 그럼 돈 많은 쪽이 그냥 사주면 되는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 사실 가능한 이야기이다 돈 많은 쪽이 베풀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과연 얻어먹는 쪽은 마음이 편할까? 뭐 특수한 케이스의 사람이라면 ‘오 공짜밥 개꿀’ 이러고 얻어먹을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나온 친구라면 밥을 얻어먹는 것조차 그에게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친구를 볼 낯짝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부담’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맥락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 내 친구와 내가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그 친구를 편의상 C라고 호칭하겠다. C는 나와 재수학원 동기이자 친구였고 서로 어느 정도 비슷한 아픔과 고충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술자리를 가지며 20대 초반부터 친해진 사이였다. 그리고 그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었는데 간혹 한국에 오면 당연스럽게도 나를 만나 술을 마시고는 했었다. 그러던 도중에 20대 중후반 경 당시에 미국에서 코인을 하게 되었고 그게 꽤 큰 수익이 나 한국에 들어온 상태였다.     


 C : 야 너도 성공해라

 나 : 왜?

 C : 그래야 같이 놀지 임마

 나 : 뭐 지금처럼 술이나 먹으면 되지 왜?

 C : 생각해 봐 물론 내가 소주를 좋아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비싼 양주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나 : 뭔 양주야 갑자기 그런 비싼 거 사 먹을 형편 못된다 네가 사던가

 C : 그래 내가 지금이야 사겠지. 앞으로도 그럴 수는 있고 근데 만약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너는 병신같이 계속 얻어먹기만 할 거야? 그래 얻어먹는다 치자 그럼 언젠가는 내가 그거에 삔또가 안 나가겠냐? 아니면 너가 삔또가 안 나가겠어? 네 형편 뻔한데 내가 양주 먹자 하면 ‘아 이 새끼가 나를 희롱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 그럼 자연스레 네가 날 피할 거고 나도 당연히 나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과 놀러 다니겠지 그러니까 성공해라 그래야 우리가 계속 술잔을 부딪 힐 수 있으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당시에 쇼크에 빠졌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던 우리 사이가 어느 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단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놀던 물이 달라서가 아니라 비슷하게 지내오던 삶의 질이 어느 순간 돈벌이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게 충격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돈에 집착하고 성공을 더 갈구하게 된 것이, 물론 지금의 나는 한없이 바닥이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 후로도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느껴지는 건 내 친구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었다. 금전적 차이는 결국 서로 노는 방식, 만남의 방식의 차이를 불러일으켰고 아마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그 차이는 아마 더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평범하게 사회를 들여다만 보아도 경제력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계급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고 이 자본주의 사회의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평범한 모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돈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뭐 나는 있어 본 기억이 없는 거 같기는 하지만... 하하! 그냥 요즘 이래저래 돈 나갈 일은 많고 돈은 없어 한탄 겸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는 하지는 않겠지만 돈이 인생의 목표를 위해 필수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거 같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앞으로 미래에도 이 ‘돈’ 즉 재화라는 것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싶다. 지폐는 쓸모 없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화폐의 가치는 절대 죽지 않으니 말이다. 언젠가 내가 작가로 성공하는 날이 오게 되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내가 써왔던 돈, 그리고 참아온 욕구, 견뎌온 수치심 등이 적절한 수치의 금액으로 내게 환급되는 날이 올까 하며 작은 기대감을 갖고 오늘도 지갑을 열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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