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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neur Jul 06. 2023

VYS의 한국인 에이스 vol.2

 중학교 시절에는 사실 축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디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축구 경기를 많이 시청해 시각적 훈련을 한 적도 없었다. 그냥 좋아서 재밌어서 친구들과 매주 아니 거의 매일 나가서 공을 찼을 뿐이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좋아서 차러 나갔는데 미국이라서 그런가? 잘하는 친구들이 적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이 VYS의 이야기이고 학교팀은 거 남미애들이 미쳐 날뛰었더라라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매주 훈련 1회, 리그경기 1회, 친선 경기 1회 이렇게 꾸준히 공을 차다 보니 팀 멤버들과 조금씩 친해졌고 이제는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었다.


 "What's up bro"


 사실을 말하자면 물론 다 친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 팀이 시작될 때는 20명이 넘는 숫자가 있었는데 이게 점차 연패를 하고 성적이 곤두박질치니 이상하게 히스패닉계 애들이 하나둘 나오지 않았다(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아무래도 남미계 애들이 빠지니 전력이 너무 약해지더라.


 그렇게 결국 시즌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11vs11 풀코트 경기에서 우리는 많아야 12명이 나오는 기적적인 참여율을 기록해 냈다...

 

 그렇게 리그전은 늘 패배를 맛보았다. 5:0, 1:0, 3:1, 2:2 우리는 늘 실점을 했고 득점을 못했으며 매 경기 무승부, 패배를 기록함에 따라 팀 분위기가 어느 정도 침체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느 누구도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또 웃기게도 우리와 같은 Vienna 지역 팀인 VYS2팀은 연전연승이었다.

 

 그 팀의 리그 성적은 꽤 준수한 성적이었고 우리는 기껏해야 패패패무패무 이런 수준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매주 리그전 다음날인 일요일에는 VYS 1, 2팀간의 친선 경기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전승을 챙겨갔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았고 늘 이들을 상대로는 승리를 거두었다. 나 역시도 여기서 활약이 어마무시했는데 요즘은 나이를 먹어서 겁먹고 헤딩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말 그대로 헤딩 머신 그 자체였다.


 내 머리에 공이 걸리면 일단 골이었다. 으마무시한 헤더 능력, 날아오는 공을 포착하고 바로 점프 그리고 머리를 갖다 대면 과장해서 대포알은 아니고 적어도 정말 발로 때린 슈팅급 헤딩슛이 날아가고는 했다.


 그렇게 머리로만 3골을 때려 박았고(발은 별개다 후후) 이게 당시 내 스텟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었다. 즉 황금 뚝배기였던 셈. 그렇게 팀 내 최고 에이스까진 아니어도 이 친선전에 한해서는 내가 최고 에이스가 되었었다.


 리그전에서는 늘 죽을 쑤고 있어서 내가 초반에 득점을 올린 적이 없다가 이 친선경기에서 처음 머리로 득점을 올렸는데 너무 신이 나서 득점 후 포효하자 축하해 주기 위해 다가오던 동료들이 흠칫하고 기다렸던 게 생각난다. 내가 너무 기뻐하자 마치 진짜 프로리그에서 득점 올린 것 마냥 축하해 주던 게 참 뭐랄까 순박했다 해야 할까?


 그렇게 VYS2팀과의 경기에서는 매번 활약했는데 안 좋은 일도 있었다. VYS2팀에 나와 같은 학교 출신의 남미애가 한 명 있었다.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국가도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학교에서 친해진 내 친구들과 아는 사이여서 가끔 같이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던 사이였다. 생긴 것도 조금 얍사리하게 생기고 말투도 영 얍사리해서 그렇게 친하진 않았던 녀석이었다.

 그 친구도 그곳에서 뛰고 있었는데 몇 번 그렇게 경기를 지더니 하루는 내게 다가와 스페인어로 뭐라고 구시렁거리더라. 근데 느낌이 딱 봐도 나한테 욕하는 그런 느낌이었고 나 역시도 한국어로


 "어 꺼져 병신아"


 라고 쿨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좀 화가 났었다. 근데 경기 내내 그 녀석은 고의적으로 내게 반칙을 행했고 뭐라고 계속 말을 걸기도 했지만 귀찮아서 영어로 그냥 셧업만 계속 외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 번 정말 심하게 내게 몸을 부딪혀 왔고 나는 화가 나서 녀석을 밀친 뒤 심판에게 항의했다.


 "Referee! he is saying some bad words and keep tackling me"


 그러나 심판은 우리 둘을 붙잡아 뭐라 했고 둘 다 경고를 받았다. 나는 많이 억울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따지기도 어렵고 따져도 안 들어주니... 심지어 같은 팀원들도 항의했는데 무시당했다.


 경기가 끝난 후 웃기게도 녀석은 내게 사과하러 왔고 나는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여서 받아줄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악수하는 걸로 서로 마무리하긴 했다. 뭐 그 이후로는 나를 건드리지 않더라만 아직도 스페인어는 몰라서 왜 그랬는지를 모르겠다.


나와 Joe

  

 그날 경기가 끝나고 내게 와서 괜찮냐고 물어본 친구가 바로 위 사진의 Joe이다. 근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나도 덩치가 커 보이는? 아니면 조가 덩치가 작아 보이는? 그런 느낌인데 저 녀석 피지컬이 어마무시했다. 센터백을 주로 보던 친구였는데 부딪히면 내 몸이 더 아플 정도였으니. 거의 바이킹 스타일이었다.


 이런 든든한 친구가 다가와 괜찮냐라고 물어보는데 두려울게 뭐가 있었겠나 하하 괜찮다며 웃으며 같이 게토레이를 한잔 들이켰다.




 쓰다 보니 길어졌고 너무 축구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조금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게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게는 미국에서 가장 즐거운 추억 중 하나인지라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여전히 후회 중인 게 저 당시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어떻게든 연락을 주고받을 걸 이라는 후회가 남아 있다. 왜 굳이 더 연락을 할 생각을 못했는지 그 당시에는 좀 덜 적극적이었던 면도 있었다. 그저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이 그리웠고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버림받는 게 아닌가 하고. 

 심지어 같은 팀 멤버 중에는 붉은 머리에 키가 큰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나와 같은 고등학교였음에도 우리 둘은 학교에서 만났을 때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었다... 그저 공차러 나왔을 때만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 느낌.


 어쨌든! 나의 즐거운 축구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려 한다. 사실 더 하고픈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음 나중에 또 생각나면 적기로 하고 이 축구 시리즈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그럼 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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