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aneur Aug 10. 2023

Fly me to the sky

비행 with 시에라 아카데미

 내가 미국에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의 연수로 인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 장군 연수를 받으러 가셔야 했기에 이 기회에 자식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생각하셔서 따라가게 된 것이다.

 아차 그전에 이미 동생은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었기에 온 가족이 모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재밌었고 기억나는 게 바로 시에라 아카데미에 방문해 비행기를 조종해 본 것이다.


 뭐 인생 통틀어 조종사가 되지 않는 한 비행기를 몰아볼 기회는 적을 것이다. 정말 돈이 썩어나도록 넘쳐서 개인 자가용 비행기가 있다면 모를까 일반적으로 누가 비행기를 소유하고 몰아볼 기회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운이 좋게도 비행기를 조종해 볼 기회가 생겼고 당연히 운전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정말 신나고 좋은 이벤트였었다.



 

 우선 시에라 아카데미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은 없지만 설명하자면 미국의 비행 학교 같은 것이다. 여기서 교육을 받고 수료하면 이제 조종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셈. 당시 회장이었나? 여하튼 왕초(?)의 자리에 마침 한국인이 자리하고 있어서 아버지와 컨택이 되었고 그 기회에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엔 한국인 교육생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대표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무래도 교육비가 비싸다 보니 대부분 중국 부호 출신의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간혹 외국인(미국인인지는 모르겠다)도 보였지만 대부분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은 한 명, 대표님을 제외하면 유일했다.


 고등학교 1학년의 나이인 17살인 시절이니 당연히 면허는 없었고 기껏해야 오락실에서 자동차 게임으로 운전해 본 게 전부인 나는 당연히 처음에는 겁이 났다.

 물론 교육용 비행기이다 보니 옆좌석에는 당연히 코치님이 함께 탑승하시고 그곳에서도 따로 조종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크게 걱정할 부분은 없기도 했고 비행기를 탈 때 즈음에는 겁보다도 신기함이 더 앞섰던 거 같다.


선글라스 이상하다


 내가 탑승했던 비행기였다. 정확히 무슨 종인 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세스나라고 한다. 찾아보니 미국 경비행기 회사의 비행기라는데 뭐... 사실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모른다 하하! 중요한 것은 비행기를 몰아봤다는 점!


 간단한 교육 이후 바로 비행기에 탑승했고 내가 좌측 메인 운전석에 우측에 코치님이 탑승하셨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늙었다... ㅠ) 이륙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운전하던 순간만큼은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조작으로 좌우 이동 그다음에 승강, 하강 그리고 점차 고난도로 360도 회전을 비롯해 비스듬히 날기도 하고 꽤나 긴 시간을 비행했다. 대략 45분가량을 조종을 하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기억상 이착륙은 내 옆좌석의 코치님이 해주셨고 그 외의 공중에서의 운전은 95% 이상 나 혼자서 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제 사진도 한방 찍었는데

비행기에서 찍은 요세미티 국립공원 가는 길!

 비행기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기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인지 아니면 가는 길목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기억상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근처에 있어서 지나가면서 보았던가 아니면 그 위로 날아갔던가 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경관이 인상 깊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이라면 환장할 듯 하지만 그 당시엔 뭐랄까 자연 풍경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인상 깊은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산 안에 거주지가 있었단 것이었다. 뭐 산골마을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주택 단지가 작게 하나 있는 정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호들이 사는 곳으로 차가 닿기엔 어려워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하하 그래서 활주로가 있고 차고지 대신에 비행기 주차장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외출할 때에 비행기를 타고 나가고 근처 공항에 비행기를 주차하면 개인용 차가 마중을 나온다고 한다. 그저 놀라운 나와 다른 세계의 삶.


 그래도 이 날만큼은 그 사람들 못지않은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조종해 본 비행기는 재밌었고 빈말인지는 몰라도 내가 꽤나 조종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동생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잘한다고 했고(물론 당시에 3살 차이는 꽤 큰 차이이다) 아주 큰 칭찬을 들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글을 쓰고 있고 동생이 조종사가 되기는 했다.


 

직접 조종하는 모습을 뒤에서 아버지가 찍어 주셨다. 좌측이 나 우측이 코치님

 사진이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지만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이때 만약 내가 정말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조종사라는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운전하는 걸 좋아하고 꽤 하는 편인걸 생각하면 비행기 조종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을 듯한데 당시엔 전혀 조종사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서 조종사를 하려면 군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극혐해 했던 거 같다. 왜냐면 당시건 지금이건 직업 군인이 되는 건 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15년 넘게 지난 지금도 이 날 이후로 비행기를 타보기만 했지 직접 조종해 본 경험은 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고도에서 보는 자연 풍경과 하늘을 떠 있다는 느낌은 말 그대로 똑같이 하늘을 떠 있는 기분이었으니 즐거운 기억 중 하나이다.

 아마 앞으로도 살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비행기를 조종하러 가지 않는 한은 더 이상 없는 소중한 경험이니 더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렸을 적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부모님 말만 들으면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던 시절의 좋은 경험으로 이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현실에 부딪혀 허우적거리며 힘겹게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당시엔 그저 일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 마땅한 계획 없이 하늘을 유랑하던 저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은 언젠가 하늘을 나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기대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International Day in JMH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