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서윤 Oct 14. 2018

정말 가사를 써왔네요?

Made in ME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동안 글이라는 걸 쓰지 않았다. 글이라는 걸 쓸 수 있는 감정도, 마음도, 생각도, 그 어느 것도 내 안에 갖고 있지 않았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 쏟아낼 것도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연히 음원 제작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음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8주 만에 나의 음원이 나온다는 것도 신기했고, 나중에는 그 음원이 음원 사이트에 올라간다는 사실도 신기했다. 


첫 번째 워크숍 

첫 번째 워크숍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들려 달라고 했다. 그래야 곡 작업을 할 수 있으므로. 나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나의 정보는 이렇습니다. 아주 피상적인 대화였다.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 이야기를 듣던 비밀의 정원 정상교 대표님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한 이야기를 얻지 못한 그는 나에게 가사 비스므리한 것을 다음 시간까지 써 오라고 했다. 


'가사 비스므리한...거?'


태어나 한 번도 가사를 써본 적 없는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과제였다. 갑자기 맨날 듣던 노래가 수능처럼 다가왔다. 가사는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과제를 받은 날부터 가사만 보고 다녔다. 현재 상위권에 있는 곡들부터 내가 좋아하는 곡들까지 장르 불문하고 그때부터 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번째 워크숍 날이 되었는데도 나는 가사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과제는 해야겠고... 가사는 못 쓰겠고... 과제 안 해가면 혼날 거 같고... 그런데 가사는 못 쓰겠고... 


두 번째 워크숍 

사무실에서 비밀의 정원 스튜디오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워크숍 가기 전에 처리해야 되는 일들이 많아 우선은 그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다 쓰고 부랴부랴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래. 내가 전문 작사가도 아닌데. 우선은 쓰자. 그분들은 전문가니까 도와주실 거야'


애써 위로하며 나는 버스에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 1개. 그리고 이별 발라드로 부를 수 있는 가사 1개. 다 쓰고 나니 도착시간이 다 되었다. 어찌어찌 가사 비스므리한 거를 쓰기는 썼는데, 괜찮은 걸까?라는 마음으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정말 가사를 써왔네요?!"

"네, 가사 써오라고 하셔서... 가사 처음 쓰는 거라 다른 가사들 보면서 써봤어요."

"이거 정말 좋은데요?!"

"아... 정말요?????"


내가 써온 게 '가사'가 맞다는 사실도 신기했는데, 정말 좋다니 더 신기했다. 그러더니 비밀의 정원 대표님은 이별 발라드 가사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다. 뭔가 순식간에 멜로디가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었다. 가이드곡까지 나오면 좋을 거 같다며 여자 보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졌다. 곡이 조금씩 완성되기 시작했다. 멜로디가 만들어지고, 가이드곡이 완성이 되고, 음을 다시 만지는 작업들이 반복됐다. 그리고는 2시간 만에 가이드곡까지 완성됐다. 


"대표님은 가사를 보면 멜로디가 바로 떠오르세요?"

"저에게 음악은 언어와 같아요. 저는 한국어와 음악을 하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음악은 언어라는 이야기를 들어는 봤지만, 정말 음악이 언어가 되는 순간은 처음 경험했다. 나의 가사는 정상교 대표님이 만든 멜로디를 껴안고 하나의 곡이 되었다. 가이드곡을 같이 듣는데 정말 좋았다. 그 과정을 함께 봐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건 둘째 치고서라도 만들어진 노래가 정말 좋았다. 나는 가수가 꿈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노래도 잘 부르지도 못하고, 그저 듣는 것만 좋아하는 일반인이었는데, 내가 부를 노래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물론.... 저 곡을 이제 내가 직접 불러야 한다는 미션이 남아있는데, 그건 당분간은 잊기로 했다. 안 그럼 너무 부담돼서 워크숍 못 나갈지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순간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지금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였다. 첫 번째 워크숍 때 나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그 자리가 나에게는 한없이 어색했다. 그래서 이야기가 아닌 정보를 제공한 것이었다. 마치 포털사이트처럼 말이다. 


가사를 쓰는 경험은 나에게는 여러모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에세이, 소설, 시나리오, 시 등 다양한 종류의 글을 써왔지만 한 번도 가사를 써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2시간 내내 가사 좋다는 무한 칭찬을 받으니 얼떨떨하면서도 좋았다. 사실 최근에 조금은 우울하고 침전된 기분이라 나를 밖으로 꺼내 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음원 작업이 나에게는 나를 밖으로 꺼내 주는 사다리가 되어주었다. 


다음 날 사촌동생들을 만나 음원 제작 워크숍 이야기와 나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힘들다는 이야기, 어려운 이야기, 내가 요즘 무엇에 좌절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런 와중에 음원 제작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기뻤는지를 이야기했다. 


"아마 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언니한테 힘내라고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사촌동생의 그 말이 나의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힘든 순간은 언제든 찾아온다. 좌절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고. 그 좌절이 나를 침전하게 만든다. 가라앉고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처럼. 힘들어도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이 작업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그 과정에서 나는 또 무엇을 배우게 될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또 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 오랜만에 나의 감정을, 나의 힘듦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말하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더 이상 내 안에서 곪지는 않겠구나. 


세 번째 워크숍에서는 인터뷰 촬영이 있다. 촬영이 무사히 끝나기를.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22082

https://sgarde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여러분 실패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