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며

- 호주, 멜버른 (Australia, Melbourne)

by 시오




호주, 멜버른

Australia, Melbourne

December 2015


비행기를 타려면 지금쯤 자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잠은 들지 않았고 현관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두 개의 캐리어가 눈에 계속 들어왔다. 내가 저 캐리어에 뭘 넣었더라...? 캐리어를 한 개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머릿속으로 캐리어를 계속 쌌다가 풀렀다가를 반복해댔다. 하지만, 쉽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번 여행도 짐이 많아서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게 1차 관문인데, 벌써부터 내일이 걱정돼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20151220_144804.jpg


집을 비우기 전에 해야 하는 의식을 눈을 뜨자마자 거행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버리고, 전기코드를 정리하고 집을 계속 둘러보았다. 내가 없는 사이, 동생이 거주할 예정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곳저곳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전달해야 할 사항들을 메시지로 남기고 집을 나섰다.

내리막길로 시작되는 집 문턱을 나서자마자, 캐리어 2개가 나를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같이 탄 아주머니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여행 가나 봐요? 어디로 가요? 살러 가요?"
"호주로 가요."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내려가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주머니는 원하는 정보를 다 얻으신 듯했다.

여행을 가는 날에는 나는 습관적으로 여권과 지갑을 상시 체크한다. 지하철 안에서 여권을 확인하는 사이에, 두 개의 캐리어가 바퀴의 성능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돌돌돌 거리면서 마지막 칸까지 미끄러져 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느닷없이 캐리어와의 달리기 시합을 시작했고,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리를 내밀어 캐리어를 저지해보려 했으나, 캐리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결승선까지 내질렀다. 나는 왜 캐리어를 두 개나 가져왔을까... 다시 한 번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이 많을 것을 대비해서 일찍 갔는데, 너무 일찍 왔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바깥 줄을 따로 만들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이 많이 투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시간은 길어졌고 사람들은 마음이 분주해졌다. 내 티켓팅을 맡았던 담당 승무원은 일처리가 너무 느렸고, 앞에 선배가 와서 긴장한 탓인지 동작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짐 검사를 하는 데 10분이 소요되니까 잠시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착실히 10분을 기다렸다가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중국 광저우를 경유하는 비행 편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광저우로 날아갔다. 왼쪽에 앉은 남자는 한국인인 것 같은데 계속 영어를 사용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여자는 중국인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이었다. 나란히 앉아있던 셋은 모두 한국인이었으나 한 명은 언어를, 한 명은 인종을 헷갈려서 묵묵히 광저우까지 날아갔다.

중국 광저우에서의 경유 절차는 까다롭지는 않았으나, 전혀 신속하지 않아서 놀라웠다. 줄을 서 있는 과정에서 급한 승객들을 골라내서 우선 통과시켜 주었다. 나를 담당했던 직원은 게이트 넘버만을 알려주고 재빠르게 통과시켜 주었다.

호주 멜버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였을 때, 나는 슬로우 모션으로 티켓팅을 해주었던 한국의 승무원이 나를 비행기의 맨 뒷좌석으로 배정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엔 한국인 신혼부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내 옆좌석에 앉아있는 여자는 무척이나 친절했다. 내가 자고 있을 때마다, 밥을 먹을 건지, 음료를 마실 건지 챙겨주었다. 하지만 난 그럴 때마다 사양했고, 잠을 청했다.


멜버른에 도착해서는, 전자여권 (e-passport) 제도를 이용하여 간편하게 입국절차를 밟았다. 세관심사가 까다롭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짐 검사도 받지 않고 통과했다. 날씨는 서늘하였고, 하늘은 맑았다.

나는 호주에 도착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