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빨래를 하고

- 날씨 좋은 날 우리는...

by 시오




호주, 멜버른

Australia, Melbourne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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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할 때, 내가 가장 하고 싶던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여행 이야기가 되었든, 책 이야기가 되었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 한국에서도 글을 쓸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컴퓨터 앞에 앉지 못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고, 잠이 들고 나서는 어김없이 악몽을 꿨다. 일어나면 피곤했고, 방 안의 공기는 바깥공기를 머금은 것 같이 차가웠다. 대뜸 보일러를 너무 많이 틀어서 도시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섰고, 그 걱정은 감기를 가져다주었다.


서울에서 걷던 걸음은 멜버른에 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약속도 없는 데 약속 있는 사람처럼 분주히 걸었고, 결국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났다. 한 달이나 넘게 있을 거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나 공원에서의 휴식 같은 건 하지도 못한 덕분이었다. 날씨는 너무 좋지만, 발은 너무 아팠고, 시티는 여행자들로 분주했다. 집으로 돌아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샤워부터.

집으로 돌아와 새벽까지 글을 쓰고, 아침에도 글이 쓰고 싶어 간지러운 사람처럼 또 글을 썼다. 글 한 편이 끝나면 잠시 휴식을 가졌고, 식사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나 예뻤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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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하늘을 보니, 아무래도 빨래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지가 집을 비운 뒤라, 세탁기를 돌리지도 못하고 손빨래를 시작했다. 수지가 오면 세탁기 작동법을 물어봐야겠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들을 햇볕 좋은 뒷마당 건조대에 널어두었다. 고양이들이 빨래를 물어서 엉뚱한 곳에 놓아두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은 널어 두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수지가 돌아왔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고, 식탁 위에 있던 조화는 자기의 자리를 생화에게 넘겨주었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냈다. 수지는 그런 면에서 가차 없었지만,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음으로 수지는 세탁기를 돌렸다. 오늘은 빨래하기에 정말 좋은 날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글을 쓰기에도, 꽃을 선물 받기에도 참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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