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가 필요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호주, 멜버른
Australia, Melbourne
December 2015
일어나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나는 크리스마스보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더 좋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브'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하얀 솜털 같은 폭신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이브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수지는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왜인지 운동복 차림으로 식탁에 앉아있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헬스클럽은 문을 닫는데 말이다.
나는 파란색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날은 너무 더웠고, 생각보다 많이 걸은 탓에 다리가 아팠다. 저녁 7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좀처럼 해가 떨어질 줄 몰랐다. 많은 가게들이 오후 5시 이전에 문을 닫았지만, 다행히도 시청 광장에는 저녁 장사를 위해 문을 여는 바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 색깔이 너무 예쁜 칵테일 등 야외 테이블에서 다들 한 잔씩 즐기고 있었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맥주로 정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서 주문한 파스타와 맥주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오래전 아이였던 어른들도 신이 난 표정으로 다들 앉아있었다. 바람이 조금 부는 듯했으나, 여전히 더웠다.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두 커플이 옆에 앉아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했다. 50대 즈음으로 보이는 두 커플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 보였다. 긴 테이블에 그렇게 다섯 사람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먹는 파스타 맛이 어떤지도 물어보고,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중에 한 명의 남자가 음식을 같이 주문해서 나눠 먹자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는 목소리를 약간 높여 대답했다.
"샘,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음식을 나눠 먹다니, 그건 말도 안 돼요."
여자의 그 한 마디에 맞은편 남자는 조용히 버거를 선택했고, 다들 각자의 취향에 맞게 메인디쉬와 음료를 골랐다. 맞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나는 남아있는 갈증을 맥주로 풀며,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친 후에, 그들은 나에게 테이블을 같이 쓰게 해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그들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괜찮아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잖아요."
나는 시청으로 향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영상이 시청 외관에 비치며 사람들이 함성을 지를 차례다.
아이들도, 아이였던 어른들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