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서윤 Feb 15. 2019

사람들은 나에게 고민상담을 한다
마치 홀린 것처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그 사람의 고민을 듣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 고민을 캐치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 상대방은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음... 사실 진짜 많다) 나를 만날 때부터 '나 사실 고민이 있어' 하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보통 그 고민이라는 것들은 A라는 대화를 한참 하던 중에 갑자기 불쑥 끼어들어 대화의 한가운데 자리하곤 한다. 


오늘은 처음 만난 분과 업무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말 그대로 정말 처음 만난 자리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서로가 무얼 하는 사람인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툭 나에게 건넸다. 업무와 관련된 고민이었기 때문에 크게 대화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았으나 정말 툭. 그 고민이 대화의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치 예정되어있던 상담인 것처럼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저도 사실 많이 변명하면서 살아요.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데 항상 시간이 없다, 능력이 없다, 등등 저 자신에게 수많은 변명을 하더라고요. 사실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건데 말이죠. OO님도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시간이 없어서 안 하시는 거예요?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못 옮기시는 이유가 정말 시간이 없어서인가요? 아니요. 하고 싶은 일은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해요. 하기 싫으신 건 아닌지, 원하는 결과를 못 만들어낼까 봐 미리 포기하는 건 아닌지 더 들여다보세요." 


그러자 상대방은 "정말 그렇네요." 라며 자신의 변명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저에게 많이 상담을 하세요. 그렇다고 제가 심리상담이나 이런 쪽은 전공한 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스페인어밖에 전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주다 보니까 고민의 내용은 다양할지 몰라도 그 고민의 본질은 다르지 않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방금 전에 해드렸던 그 이야기, 오늘 다른 분께도 똑같이 이야기해드렸던 거예요. 신기하죠? 그러니까 그만 고민하시고 그냥 하세요. 고민할 시간만 줄여도 이미 다 하셨을 거예요." 


상대방은 나를 바라보며 "그런데 정말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져요. 저도 모르게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술술 털어놓게 되네요. 뭔가 잘 들어주실 것만 같아요." 


응..? 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처음 만난 분한테 이런 이야기를 듣자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지금까지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던 분들의 얼굴과 너무 닮아있어 더욱 놀랐다. 정말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툭. 하고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상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담을 들어주는 것도 내가 그것에 대해 무언가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했던 고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앞서 이야기한 대로 그 본질은 매우 닮아있어 "제 의견에는..." 이라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다행히도 다들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머릿속에 머물러있던 고민들을 해결하고 '실행'이라는 해답을 가지고 돌아간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은 수많은 무게질을 하며 어느 쪽을 선택해야 더 이득인지를 따져본다. 하지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결과를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는 것도 하지 않은 것도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하지만 나는 선택을 하는 데 있어 변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능력이 되지 않아서, 이것 때문에 안 될 것 같고 저것 때문에 안 될 것 같은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물론 너무나 자동적으로 변명을 할 때가 많다. 변명을 하는 이유는 늘있다. 변명 자체가 이유가 아니라, 변명을 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진짜 내가 실행하지 않는 이유가 나온다. 대부분 '하기 싫어서'가 진짜 이유다. 요즘 나는 그 진짜 민낯을 마주 대하며 내가 왜 실행하지 않았고, 실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얻어진 결과를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라 하지 않은 이유를 마주 대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마주하는 노력 덕분에 나는 좀 더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나가고 있다. 


나에게도 무언가 힘이 있다면 사람들이 툭. 고민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모든 고민에 명쾌하게 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그저 그 고민을 들어줬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힘을 얻는 것 같다. 고민을 들어주는 일이 나의 메인 분야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소소하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고민을 멈추게 하는 힘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도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큰 힘 중에 하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개떡인가요, 찰떡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