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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17. 2019

사람은 죽으면 '말'을 남긴다

할머니의 말을 새기며



사촌동생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6.25 전쟁도 다 겪고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 농사부터 자식 키우는 일까지 뭐하나 쉬운 게 없었던 할머니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했고, 할머니가 낳은 자식부터 그 자식이 낳은 자식들까지 할머니 품에서 자라났다. 할머니는 벌써 오래전 돌아가셨지만,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음을 항상 느낀다. 나는 죽은 사람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그가 생전에 했던 '말'로 사람들에게 살아남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 할머니가 한 가지 일만 잘해도 먹고 산다고 그랬어." 


나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해주신 말의 영향으로 벌써 몇십 년째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떤 대화 속에서 저런 말이 오고 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할머니의 그 말이 아버지의 가슴에 콕 박혀 살아오고 있으리라. 아버지는 정말 한 우물만 파는 사업가로 살고 계시다. 


"재주가 많지 않아도 사람은 먹고살아. 그러니까 재주 없다고 걱정하지 마."


재주가 없어서 고민이었던 작은 고모는 어느 날 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의 곁으로 가 '엄마, 나는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까? 나는 잘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고민이야.'라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재주가 많지 않음을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고모에게 위로해줬고, 고모는 친척들 중에서 가장 화목하게 살며 정말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살아왔다. 


"먹기 싫은 거는 억지로 먹지 말고 남겨라."


농사를 지었던 할머니는 우리가 밥을 먹거나 할 때면 그 밥을 다 먹으라는 소리를 하신 적이 없다. 대부분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그것이 얼마나 아까운지 알기 때문에 음식 남기는 것에 대해서 엄하게 훈육하실 법도 한데, 할머니는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배부른데 많이 먹다가 탈이 날 수 있으니 먹기 싫은 것은 억지로 먹지 말고 남기라는 말을 하셨을 정도다. 사촌동생도 나도 할머니의 이 말을 기억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촌동생들은 어디 가서 꼭 다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살아올 수 있었다.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안 그럼 병난다." 


중학교 때 교무실 청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회에서 선생님들에게 치킨이며 케이크며 이것저것 간식을 준비해온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들 중 한 명도 교무실 청소를 하던 학생들에게 무엇하나 먹어보라는 소리가 없었다. 케이크를 너무 좋아했던 나는 그게 너무 서러워 집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엄마와 할머니에게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 주에 성당에 가기 위해 시내로 가셨다가 나를 위해 생크림 케이크를 사주셨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걸 먹으면서 자라야지, 안 그럼 병난다고. 사실 지금이야 케이크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내가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정말 생일이거나 특별한 날이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할머니의 그 사랑이 나에게는 온전히 다가와 그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19살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그리워 몇 번이나 꿈속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늘 더 함께하지 못했음에 가슴 아파 할머니 꿈을 꾼 날에는 늘 울면서 깨어나곤 한다. 늘 돌아가셨다고만 생각해서 그게 참 슬펐는데, 사촌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할머니는 '말'로써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가 했던 그 '말'의 씨앗이 그 자식과 그 자식이 낳은 자식들에게 박혀 그렇게 살아가게 만드는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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