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서윤 Feb 24. 2019

나는 전화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전화받는 걸 싫어한다. 아니 싫어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전화받는 걸 싫어하게 된 건 오래되었다. 어렸을 때는 전화 오는 게 무섭지도, 싫지도, 그러니까 전화 오는 것에 대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전화받는 것에 대해 더 나아가서는 전화를 거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전화가 무서웠다. 좀 더 깊이 들어가자면 수화기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내가 목소리로 만나야 하는 상대방의 반응이 무서웠다. 예상치 못한 반응. 내가 기대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정리되지 않은 말들로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나는 해외영업사원이었다. 나의 주된 업무는 전화업무였다.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때도 두려웠다. 가능하면 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를 걸면서도 제발 자리에 없어라~라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보고는 해야겠고, 전화영업을 했다는 것은 증거로 남겨야 했고, 하지만 전화를 하기도 받기도 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일로 그 수많은 계약을 달성해낸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다. 전화하는 게 너무 힘드니 남들에 비해 더 많은 메일을 보내고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 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에게는 전화를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 이제는 불특정 다수와 만나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원하든 원치 않든 불특정 다수들과의 대화가 시작됐고, 어디서 알았는지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들이 많았고, 내가 전화를 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메일과 메신저로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가 하기 싫은 전화업무만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좋았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대방의 반응이 나는 힘들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피했다. 최대한 피하면서 살아왔다. 다행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메시지나 메일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많았다. 나는 왜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힘들게 하는 거냐며 불평했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리 피해도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의 통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업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전화통화가 힘들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내가 옳다, 네가 틀리다는 내용으로 참으로 많이도 싸웠다. 내가 쓴 텍스트는 상대방을 날카롭게 베었다. 아주 논리적이고 정교하고 날카로운 단어들만 골라서 사용했다. 나는 텍스트를 가지고 놀며 논리적인 척했다. 메일은 나에게는 방패이자 칼이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베었다. 관계는 단절되었고, 나는 승리했으나 승리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전회를 할 줄 모르고, 나는 여전히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방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옳았으니까.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긴장하여, 나는 항상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다. 전화받기 싫은 순간들이 많았으나 그것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자동응답 서비스를 돈을 내고 결제할 정도였다. 나의 방패는 더욱더 견고해졌다. 나는 내가 받고 싶은 전화만 받았다. 받기 싫은 전화는 항상 문자나 메일로 대응했다. 


언제부터 전화받기가 싫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겹친다.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집에 빨간딱지를 붙이러 오는 사람들이 불시에 집을 찾아오곤 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권리를 주장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나, 엄마 그리고 내 동생은 그런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게 일상이었다.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난 괜찮지 않았다. 처음엔 초인종 소리가, 다음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전화벨이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암묵적으로 집에 없는 척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집에 있었으나 집에 없는 척했다. 그리고 나는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놓치는 전화들이 많았다. 아니, 놓쳐야 하는 전화들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꾸역꾸역 그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늘 긴장 속에서 일을 해야 했고 전화를 한 통화하고 나면 많은 에너지가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힘든 나날이었다.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에 많은 지장을 줬다. 그것을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순간순간 두근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이겨내지 못했다. 그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회피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나에게는 많지 않았다.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경험을 많이 갖지 못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원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관계에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를 만들지 않아야 하니 모든 관계에서 잘 보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만이 나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서나 나타났다. 내가 잘못했든, 상대방이 잘못했든, 관계에서 일에서 그 외 부분에서 문제가 나타나 나를 바라봤다. 


"자 이제 너는 어떻게 할 거지?" 


문제는 뱀처럼 여기저기 매끈한 몸으로 그 차가운 몸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절망했다. 아무리 관계에서 노력해도 실수가 있었고, 오해가 있었다. 관계에 애쓰던 나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모든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내가 끝까지 데리고 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끊어내자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관계에 있어서 애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끊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관계는 매우 심플해졌다. 그리고 나는 외로워졌다. 문제는 여전히 뱀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에 숨 막힐 때면 우울증이 찾아왔다. 슬럼프라는 모습으로 슬며시 다가와 우울증이라는 깊은 우물 속으로 나를 내던졌다. 우물은 깊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 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안간힘을 썼다. 누구에게 기대지도 못하고 혼자서 안간힘을 쓰는 나날들이 많았다. 


'정말... 노력했는데. 왜... 왜...' 


관계에 아무리 애를 써도, 관계를 아무리 끊어내도, 그 어떤 방법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방법을 몰랐고, 나는 늘 우물 안에 있었다. 


"문제가 생긴 사람과 그 문제를 직접 이야기하세요." 


지인의 추천으로 세미나를 들었다. 그때 내가 얻은 한 문장은 바로 문제가 생긴 사람과 그 문제를 직접 이야기하고 풀라는 것이었다. 간단해 보이는 저 문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지 세미나를 통해서 나는 보았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긴 사람과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것을 하소연하거나 아니면 나처럼 자신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탓해도, 남을 탓해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문제가 생긴 사람하고 풀어야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간단한 해결책을 나는 내 삶에 적용시키지 못하고 살아왔다. 세미나를 듣던 사람들이 그것에서 돌파구를 하나씩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얼마나 내 삶에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세미나를 끝냈다. 


세미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김없이 뱀 같은 문제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평소처럼 그 문제에 대한 대응을 메신저로 했다. 나의 잘못으로 화가 난 상대방은 나에게 격앙된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메신저로 이야기를 하다간 이 문제는 깊어지겠구나,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뱀처럼 또 나를 목 조르겠구나, 라는 생각에 나는 전화를 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사과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고, 상대방도 그것에 대해 양해해주었다. 진심으로 문제를 마주 대할 뿐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없애버렸다. 나는 상대방과 3일에 걸쳐 3번의 통화를 했다. 처음엔 문제에 맞서기 위해, 다음엔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눴다. 나를 칭칭 감고 있던 문제가 사라졌다. 그리고 3번째 통화를 나누고 난 뒤 상대방은 나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남겼다. 기적이었다. 나는 관계에 애쓰지도 않았고, 관계를 끊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문제를 직면하고 진심을 보여줬다. 인정할 것을 인정했고, 우리는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태도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닫고 나자, 나는 예전처럼 전화가 무섭지 않게 되었다. 아직까지 100% 모든 전화를 즐겁게 받지는 않지만, 80%까지 전화 공포증을 이겨내고 있다. 연습은 더 필요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이런 두려움들이 분명 사라질 거라고 믿는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매일매일 실감하는 중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전부인데, 나는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계의 단절이 아닌 관계의 가능성을 체험한 이후로는 예전보다 더 많은 가능성과 기회 속에 살게 되었다. 나는 자동응답 서비스를 해지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은 죽으면 '말'을 남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