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있어서 '나만 배려하는 거 같아' '나만 좋아하는 거 같아'라는 생각은 속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자주 속상한 감정을 끌어안고 살아왔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도 모르고 속상한 감정에 얽매여 내가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들을 오해했다. 그 오해가 점점 더 관계를 망쳐가기 시작했고, 망쳐진 관계는 쉽사리 회복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얼굴을 볼 수는 있어도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오해는 상대방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오늘 2명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을 이야기했다.
"사실 나 속상했어."
"왜?"
"나는 네가 나에게 OOO이라고 한 말을 ㅁㅁㅁ라고 들었거든."
"응? 아냐 나는 너에게 OOO이라고 말했는 걸."
"맞아.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는 ㅁㅁㅁ라고 들렸어. 그게 날 속상하게 만들었어."
"아 그랬구나"
"하지만 나는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 그게 결국은 내가 널 100% 응원하지 못하게 만들었어. 나는 사실 너를 좋아하고, 너의 활동들을 응원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용기 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아냐. 내가 만약 그때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속상한 감정도 생기지 않았을 거야. 이런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나는 나의 속상한 감정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시 마음 콕콕하는 그런 감정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감정은 관계를 망치고 있었다. 내가 응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나에게서 멀어지게 했고, 서먹하게 만들었고,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별 거 아닌 게 아니었다. 그건 정말 별 거였다. 다만 내가 그 감정을 얍잡아봤을 뿐.
나는 오늘에서야 속상한 마음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고, 그 마음의 시작을 보기 시작했다. 마음의 시작을 보자 그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자 풀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머리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나 혼자서만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내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었다. 감정의 티끌까지도 없애려면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잠이 쏟아졌다. 나는 전화를 걸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오늘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각했지만 나의 실행은 계속 뒤로 늦춰졌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져서야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 내가 할 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말이 튀어나올까 봐 겁이 났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말을 했지만, 결국 난 횡설수설했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걸었던 두 사람은 나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나의 용기를 진심으로 인정해주었다. 고마웠다. 들어줘서. 고마웠다. 다시 예전처럼 내가 두 사람을 응원하고 좋아하게 돼서. 전화를 다 끊고 나니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 힘이 풀렸다. 하지만 마음에는 어떠한 속상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떠한 마음의 티끌도 남아있지 않았다. 반가웠다. 어떠한 감정도 쌓이지 않은 이 상태라면 나는 무엇이든 좋은 것들만 골라서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새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횡설수설 말하더라도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운 밤이다. 내가 용기 낸 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기분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