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나에게 솔직한 사람은 대화를 할 때 필터링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사람이었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남보다는 자신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로는 그 '솔직함'을 이용한다고도 생각했다. 어떠한 말 앞에 '나는 솔직한 사람이야'라는 전제와 함께 '솔직하게 말하자면'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은 불쾌함을 가져오곤 했다. 나에게 솔직함은 좋은 경험보다는 안 좋은 경험들이 많았기에 나는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함은 나에게 불편함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요즘 나는 '솔직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진짜 '솔직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것은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나서부터였다. 내가 늘 불편하게 생각해오던 '솔직함'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마워'라는 표현과 함께 듣게 되다니 놀라웠다. 솔직하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태어나 처음 배운 단어를 들은 기분이었다. 그것이 너무 생경해서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되뇌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내가 그동안 '솔직하다'라는 표현을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분명 어디선가 잘못되었다. 사실 솔직하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는 것인데, 나는 왜 거짓 없는 표현을 불편하게 느꼈을까. 나는 어쩌면 상대방의 솔직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상대방의 솔직함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상대방이 이야기한 솔직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어쩌면 솔직한 것은 배려가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은 아닐까? 상대방이 상처 받지 않아야 하니까 그리고 나도 상처 받기 싫으니까 둘러둘러말하기에 능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화에서 항상 직진하기보다 커브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돌아서 가더라도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는 식으로 나는 대화에서 항상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은 아닐까? 솔직하게 직진하기보다는 돌아가더라도 우회하는 방식의 대화법을 선호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까?
나는 항상 상대방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물론 지금도 신경 쓰인다. 나는 남의 시선이 너무 신경 쓰여서 나의 진심을 이야기하기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지 않았다. 나의 배려는 나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배려였기에 그 배려는 상대방에게 다가가도 진실되지 못했다. 배려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가리기 위한 면피용일 뿐이었다. 그랬기에 나의 배려는 힘이 없었고, 힘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람들은 나의 배려를 더 요구했다. 나는 지쳤고, 나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은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았지만, 어느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게 하지 못했다. 내가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지도, 상대방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하지도 못했다.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나의 대화법이었고, 내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지금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통해 나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감정, 염려, 기대 등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를 가두고 있던 유리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한여름 손에 쥐고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흘러 흘러 땅바닥으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솔직함은 내가 그동안 갖지 못했던 자기표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느라, 내가 만든 이미지에 내가 갇혀 항상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진정한 자기표현을 가져다주었다.
솔직함은 내가 꾸민 배려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날것 그대로이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라는 단단한 알맹이를 품고 있다. 진심을 담은 솔직함은 남을 해치기 위한 말하기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말하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불편하게 여겼던 솔직함은 사실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의도를 담았거나, 솔직한 척 연기하며 솔직함을 이용하려는 대화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솔직함'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함도 연기할 수 있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솔직함'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하다면 나의 잘못도 인정할 수 있다. 솔직하다면 나의 말하기에 책임질 수 있다. 솔직하다면 상대방의 거절에도 관대해질 수 있다. 솔직하다면 상대방의 진심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 멋대로 해석하는 솔직함이 아니라 진짜 진심이 담긴 솔직함을 구분해낼 수 있다. 솔직함에는 힘이 담겨있다. 진심이라는 단단한 힘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