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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Mar 16. 2016

개떡인가요, 찰떡인가요?

- 개떡같이 이야기하면, 개떡같이 알아듣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회사라는 유기체는, 의사소통이 필수다. 하지만,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상사들의 요구사항은,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떡같이 이야기하면, 개떡같이 알아듣는 게 맞다. 개떡을 사 오라고 이야기했는데, 찰떡을 사 오면 그건 잘못 사 온 것이 아닌가. 


업무를 진행하고 회사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센스가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정확성을 배제하고 융통성을 발휘해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됐다. 더욱이 보고를 받을 때는 정확하게 받기를 원하면서, 업무를 지시할 때는 개떡같이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제대로 말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실패한 의사소통이다. 업무에서 그것은 곧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조직에서는 잘못 이야기한 사람이 아니라 잘못 알아들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정말 못 알아들었다. 그가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어서 나는 조금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표정을 보고 그는 나에게 답답한 듯이 말했다. 


"개떡같이 얘기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야지"


그는 찰떡같이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왜 그가 나에게 개떡같이 이야기했는 지도 모르겠지만, 개떡같이 이야기한 자신이 아니라 개떡을 찰떡으로 바꿔서 알아듣지 못한 나를 탓하는 지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초코파이 같은 사이도 아니었고, 오랜 시간 같이 보내면서 척하면 척할 정도의 팀워크를 쌓은 사이도 아니었다. 그는 상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내 위에서 일을 지시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그의 밑에서 이제 겨우 그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찰떡을 사 오라는 건지, 개떡을 사 오라는 건지 정확히 이야기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인 듯했다. 몇 번의 의사소통 실패로 인한 시간과 체력 낭비를 경험하고 나서, 나는 상대방에게 다시 되묻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언어가 아니라 나의 언어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로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될지는 몰라도 필요 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큼은 줄일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이것도 몰라서 다시 묻는 거냐는 눈길을 피할 방도가 없었지만, 힘들게 개떡을 구해서 왔는데 옆집에서 파는 찰떡 사 오라는 얘기였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지 않겠는가.


나 역시 정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하는 것을 주의하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목적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기를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 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찰떡인지 개떡인지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말하라. 그런데 찰떡인지 개떡인지 잘 모르겠으면 그렇게 이야기하라. 내가 원하는 건 사실 찰떡에 가까운데, 찰떡보다 더 맛있는 개떡이 있으면 그걸 사와도 좋다고. 그럼 난 그를 위해 찰떡보다 더 맛있는 개떡을 준비하겠다. 


업무를 지시하거나 요청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지시받은 사람은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파악하기 어려우면 필요 없는 시간을 더 쓰게 되고, 그 필요 없는 시간을 만드느라 우리는 오늘도 야근, 내일도 야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찰떡같이 이야기하라. 

당신이 원하는 게 찰떡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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