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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Oct 05. 2020

나는 더 이상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순간 ‘극복'하려고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좌절을 맞닿드리게 되었을 때, 불행을 만났을 때, 불확실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내가 갖고 싶지 않은 습관에 매달려있을 때, 기타 내가 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극복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헤쳐나간 스토리에 열광한다.      


하지만 나는 아주 많은 순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더 수렁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수렁에 빠지는 아이러니 말이다.     

 

아무리 자기 계발서를 읽어도, 동기부여가 되는 영상을 봐도, 그때뿐이었던 순간들. 저 사람은 되는 거 같은데,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그런 짜증 나는 순간들. 그렇게 뭘 크게 잘못한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크게 욕심부린 거 같지 않은데 상황이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그런 순간들. 오히려 나쁜 짓을 하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더 잘 나가고 잘 살 때, 원래 세상은 그런 건가? 내가 미련하게 사는 건가? 하며 체념했던 아주 많은 순간들.  

    

그 많은 순간들에 짜증내고, 화내고, 절망했던 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극복이 아니다. 내가 해야 됐던 건 감정적으로 구는 것도,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마주하게 된 좌절보다 더 크게 존재하는 것. 내가 원치 않았지만, 한 번도 바란 적 없었지만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좌절보다, 내가 더 크게 좌절 앞에 존재하는 것. 내가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라는 마음으로 체념하듯이 그것을 흘려보내지도 않는다. 좌절의 순간이 찾아와도 거기에 서는 훈련을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좌절보다 더 크게 존재하는 연습을 한다. 좌절이 10이라면 100의 존재로 그 앞에 선다. 그렇게 크게 나를 만들었을 때, 좌절은 작아지고 오로지 나만 남는다. 무엇이 가능할지 생각하고 그 가능성으로 행동만 하는 ‘나’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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