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살면서 딱 하루 출근하는 게 설레는 날. 그 이름 첫 출근. 재택회사로의 첫 출근 날, 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에서 출근했다. 이렇게 바로 일어나 컴퓨터를 켜는 게 출근이 맞느냐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특권을 굳이 거절할 이유 없다. 이제 나는 출근길이 없다! 출근 준비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아침부터 직원소개를 위한 주간회의가 잡혀있기 때문에, 세수하고 머리를 정돈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잠옷에서 후드티 정도로 갈아입은 정도이지만 이렇게만 해도 멀끔해 보였다. 물론 바지는 갈아입지 않는다. 그렇게 주어진 화상회의 링크로 들어가니, 대표님과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좋지 않은 화질이었지만 모두가 방금 일어난 컨디션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묘하게 부은 얼굴들로 모두가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이라 모든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길에서 만난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화상회의는 너무나 낯설었고, 노트북 화면 속 직원들은 더 낯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거리는 직장생활에서 오히려 긍정적이다. 적당한 거리의 타인인 직원들은 그 누구도 텃세를 부리지 않고, 부담스러운 친절을 베풀지도 않는다.
회사에 두 가지가 없다. 사무실과 사수. 사무실이 없는 것이 좋아서 왔는데, 사수가 없다는 것은 꽤 당황스러웠다. 집에서 홀로 어리바리 벙쪄있는 신입을 도와줄 것은 오로지 매뉴얼뿐이다. 회사에서는 FLOW(플로우)라는 업무협업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첫 출근날 주어진 첫 임무는 플로우를 살펴보며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었다. 또한 회사 공유드라이브에 올라와 있는 여러 양식과 매뉴얼을 읽으며 스스로 배워야 했다.
담당 PD가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할 때까지 혼자만의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머리 위로 띄워진 수십 개의 물음표를 어디에 해소하지 못한 채 모니터만 바라봤다. 다행인 건 들을 사람이 없어서 “뭐라는 거야 이건.” 따위의 속 시원한 혼잣말은 할 수 있었다.
오후에는 화상회의를 통해 PD를 만났다. 담당PD는 친절한 말투로 신입에게 회사 관련 이것저것을 설명해준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자꾸만 딴생각에 빠지게 된다.
‘저 사람도 바지는 잠옷 바지를 입고 있을까?’
따위의 생각. 랜선으로 만나는 직장동료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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