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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26. 2016

시대의 아픔을 시와 총으로
이야기한 두 청년의 이야기

[리뷰] 동주 & DongJu




한국, 서울 

Korea, Seoul 

February 2016 


동주 포스터


감독: 이준익

각본: 신연식

제작: (주)루스이소니도스 

배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최홍일, 김정석, 최희서, 신윤주, 성홍일, 민진웅 등 


동주 영화 정보



시대의 아픔을 시와 총으로 이야기한 두 청년의 이야기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시대적 고통과 아픔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구나, 라는 것이었어. 그들은 고작  스물아홉 살에 생을 마감하였고, 반짝이던 재능은 아스라이 사라져버렸어. 그들이 정말로 두려워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를 쓰는 게 좋았고, 문학을 사랑했던 동주와 총명했던 재능과 더불어 행동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몽규. 둘은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지녔음에도, 세상을 향한 아픔은 너무나 닮았어. 시대가 만들어준 같은 질량의 괴로움이었을 거야. 


하지만, 동주라는 영화를 단순히 일제강점기에 대항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이라고 요약하여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 시대가 있기 전에,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덜컥 당선된 몽규를 보며 애써 부럽지 않은  척하는 동주의 뒷모습, 교토 제국대학을 가고자 했으나 낙방하였을 때의 동주의 축 처진 어깨, 늘 자신에게는 같이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하지 않는 몽규에게 서러움을 토해내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좋아했던 시인 윤동주는 그저 젊은 청년이었을 뿐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어. 


우리는 가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에 대하여,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고 형상화할 때가 많아. 하지만,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시인 윤동주는 그저 동주라고 우리가 친근하게 부를 만큼의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원하던 대학에서도 낙방하고, 좋아하는 일을 그저 계속할 뿐인,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의 모습이자 곧 너의 모습 말이야. 


동주와 대비될 정도로 몽규의 활약은 두드러졌어. 거침없이 내달리는 말과 같았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그의 모습은 동주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 분명 그 둘은 너무나 달랐으니까. 


"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들꺼이까."


몽규의 이 대사가 오래도록 울림이 남았던 이유는, 몽규는 누구보다도 동주를, 그리고 동주가 아끼는 그 시를 같이 아끼고 있었단 사실을 저 한 마디로 알 수 있기 때문이었어. 그는 문학을 가볍게 본 것이 아니야.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자신은 총을 든거지.  


"시도 자기 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모두가 다 총을 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 또한 총을 들었던 사람들만을 우리가 독립투사라고 부를 수도 없을 거야. 누군가에게 총을 들이대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의 가슴에 큰 울림을 남기는 사람 또한 자신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시대가 불안하다고 하여, 낭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철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판할 수도 없는 거지. 낭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멈출 때, 누군가를 어루만져줄 목소리를 잃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총을 들었다고 하여 그 사람이 대단한 것도, 문학을 지켜낸다고 하여 그 사람이 대단하지 않은 것도 아닌 거야. 동주도 몽규도 시대의 고통을 여실히 느끼며 살아간 그 시대의 젊은이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이 시대에 태어나 시인이 하고 싶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그래서, 나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시대가 길어질수록 동주는 시가 쉽게 쓰이는 것도, 시를 계속 써왔다는 것도 부끄러워해. 시대가 그를 부끄러운 젊은이로 만들어갔던 거지. 국가의 아픔이 끝나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을 테니까. 그가 남겨둔 시를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읽고, 또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대를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아픔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끄러워했다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며, 그 마음을 같이 어루만지고 있단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국가가 국가를, 민족이 민족을 핍박하고 억압할 때, 그 국가와 민족에게 남는 것은 패망뿐이라는 사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동주가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을 때, 몽규는 사람들 앞에서 외쳤어. 그는 오로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생각밖에 없었지. 서명을 하라는 고등 형사 앞에서 거짓으로 쓰인 종이를 부여잡고 울분을 토하는 장면이 나와. 종이에 써져 있는 대로 하지 못한 게 한스러워서 서명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가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젊은이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힘없이 일본의 생체실험 대상자가 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돼. 그가 세상을 떠나기 20일 전, 동주 역시 같은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고 말지.  


흑백 화면에 배우들의 열정과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 영화였어. '동주'라는 영화 제목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절대 윤동주 시인을 이름 두 글자로만 부를 생각도 못했을 거야. 독립운동가 송몽규에 대해서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었겠지. 분명 그 시절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청년들이었는데, 우리는 너무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 예술가들의 역할이 여기에 있겠지. 잊히는 것들, 왜곡되어지는 것들, 누군가 감추려고 하는 것들을,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기억하기 위하여, 소중한 것들을 지켜주기 위하여, 잘못된 권력에 맞서 우리의 오늘을 지켜내기 위하여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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