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 세상의 다양한 맛을 즐겨라

by 시오




나에게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를 바라던 사람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나를 보면서 놀라워하기도 했지만, 늘 그 놀라움의 끝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한 가지에 집중했던 사람들만이 결국 성공했다는 말도 잊는 법이 없었다. 운동선수들의 도전이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큰 감동으로 전해오는 듯했다. 그에게 성공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였을 때 생기는 것이었고, 나의 다양한 관심사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로 치부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직업군도 워낙 다양하여, 알고 있는 직업군은 장래희망으로 모두 적어냈던 것 같다. 호기심도 많았거니와 멋있어 보이는 일들을 좋아했다. 내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하거나, 남이 멋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들. 어찌 되었든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멋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들에 늘 참여했고 참여하고 싶어 했다.


책을 읽을 때는,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다. 대학교 때 논문 수업을 들은 이후로,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독서습관은 더욱 굳어졌다. 나의 논문 주제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에 대한 비교연구였고, 당시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과 상황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읽던 습관이 몸에 배었다. 특히,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공부를 할 때에는 관련 도서들을 모두 쌓아놓고 이 책 저 책 넘나들면서 읽는다. 한 번에 여러 책과 자료들을 읽다 보면, 내용이 섞이거나 헷갈리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섞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건, 그것을 통해서 얻어지는 나의 생각 확장일 뿐, 누군가에게 지식을 과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험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기회가 닿는 대로 시도해보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일들로 넘쳐나고, 내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주일 후, 체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체코 사람들에게도 우리처럼 자신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나는 그렇게 내 생애 첫 여행을 시작했다. 멕시코 유학 시절에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좌를 열었고, 교재도 만들었다. 내가 머물렀던 과달라하라에는 일본문화원은 있었지만, 한국 문화원은 없었기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여건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매경에서 하는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 달 치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티켓을 구매했다. 말콤 글래드웰의 첫 내한 강연이 세계지식포럼에서 열린다는 사실에, 휴가까지 내고 찾아갔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하여 강연장을 찾았을 때, 외고에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강연장을 활보하고 다녀서 놀다.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은 회사의 지원을 받아 강연을 들으러 왔다. 선거철이었기 때문에 당시 대선 후보들이 시간을 내어 얼굴을 비췄다.


때로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길거리에서 천 원짜리 음식을 먹기도 한다. 길거리 공연을 보다가 신이 나서 춤을 추기도 하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이 나오는 공연장 맨 앞자리에 앉아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무엇을 본다는 것이 신나던 시기를 지나,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즐기고, 나중에는 내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다양한 일에 뛰어드는 나를 철없는 어린아이로 보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나를 하나의 무엇인가로 규정하기를 어려워했다. 너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는,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다는 것은 곧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고, 다르다는 것은 때론 부정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오늘 우연히 SNS에 올라온 사연 하나를 보았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자신을 보고, 주변에서는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걱정 섞인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말은 신경 쓰지 말자고 하더라도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무언가를 제대로 해 놓은 게 없으니 그런 말들에 번번이 발이 묶이는 모양이었다. 주변의 말처럼 한 우물만 파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내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기웃거렸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 하는 것 그리고 못하는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음식의 간을 보듯이, 나는 세상의 다양한 맛을 보고 다녔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냥 간만 보고 다니지는 않는다. 내게 주어진 기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는 제대로 맛을 보고 다닌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나는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고민과 스스로의 결정 없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 본인이 어떤 맛을 낼 줄 아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한 가지에 집중한다는 것이 성립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한 운동선수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그것을 찾는 데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러느라 남들보다 시작이 느릴 수는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느릴 뿐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무언가 정하고 시작하기에는 세상엔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의 다양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진짜 자신만의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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