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에

- 그는 서울역에 잘 도착했을까

by 시오




그 날은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스타킹을 신기에 좋지 않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치마를 입기 위해 스타킹을 신었다.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나는 첫 번째 횡단보도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중년의 남성이 서울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며 길을 물었다. 나에게 다가온 그를 살피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우산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면 우산이 없었다) 온몸이 이미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고, 더욱 특이한 것은 신발을 신고 있지도 않았다. 우리는 흔히 그런 사람들을 노숙자라고 표현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단어 외에는 그 사람을 표현할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서울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고, 그는 고맙다며 내가 가르친 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이미 흠뻑 젖었지만, 그는 온몸으로 비를 맞아가며 서울역으로 향했다.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서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고, 비닐우산을 하나 급하게 샀다. 그렇게 급하게 산 비닐우산을 들고 나는 내가 가리켰던 서울역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가면서도 나는, '분명 비가 오는 날은 스타킹을 신기 좋은 날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꽤 나와 멀어져있었다. 이름을 몰라 부를 수도 없었고,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도 그리 정다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부르지도 못하고 횡단보도 앞에서 그가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봤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그렇게 비가 오는 거리를 달려가 그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저기.."

딱히 그를 부를 말이 떠오르지 않아 '저기'라는 추상적인 말을 건넸지만, 다행히도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비닐우산을 펴서 그에게 건네주었고,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그 표정이 어떻게 끝나는지 다 지켜보기도 전에 그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 되돌아왔다. 횡단보도를 두 개쯤 건넜을 때, 나는 그에게 단 돈 만 원이라도 쥐어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그와 나의 거리는 더 멀어진 뒤였다.

나는 그에게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왜 서울역으로 가는지, 신발은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비를 맞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사실 보기 힘들다. 나는 그에게 신발을 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에게 우산은 주고 싶었다. 적어도 비는 맞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을 걸어서 가려면 아무리 걸음이 빨라도 족히 40분은 걸리는 거리였고,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 무렵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비닐우산을 쓴다. 그래야 남에게 우산을 쉽게 건네줄 수 있다. 너무 좋은 우산을 쓰고 외출을 하는 날에는,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아주 대단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분명 누군가는 그에게 신발을 주었을 테고, 또 누군가는 그에게 만 원을 쥐어줬을 테고, 어떤 이는 그에게 밥을 주었을 것이다. 그가 서울역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그를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서울역이 어디냐고 길을 묻던 그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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