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편지 &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아이에게
[첫 번째 편지]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아이에게
사랑하는 아이에게,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우리가 언제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엄마는 가끔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단다. 아직 너의 아빠를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네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조차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단다. 만약, 엄마를 닮았다면 분명 터질 것 같은 통통한 볼을 가졌을 거라고 너의 이모는 말하곤 하지. 엄마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정말 볼이 통통하고 빨갛거든. 마치 사과처럼 말이야.
엄마보다도 이모가 먼저 너를 보고 싶어 했단다. 엄마가 성모 마리아도 아닌데, 자꾸만 조카를 갖게 해 달라고 응석을 부리지 뭐야. 올해 스무 살이 된 너의 이모에게 엄마는 종종 아이는 혼자 갖는 게 아니라고, 초등학생도 다 아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하물며 엄마는 아직 누군가와 결혼을 약속도 하지 않았단다.
너의 할머니는, 혼자 살 수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남자 친구는 없는지 종종 물어본단다. 너의 할머니는 엄마가 주변에 남자도 없고, 연애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거든. 너도 나중에 크면 알겠지만, 모든 연애사를 부모와 상의할 수는 없는 거란다. 특히, 너의 할머니는 생각보다 간섭이 심한 분이라, 편한 연애를 하고 싶다면 할머니에게는 상담하지 않는 게 좋단다. 할머니가 나중에 너에게 이성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면, 그냥 없다고 얘기하는 게 좋을 거야. 물론, 엄마에게도 차라리 감추는 게 좋을 것 같다. 할머니 딸인데, 엄마라고 해서 너의 연애를 그저 쿨하게 바라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거든.
엄마의 할머니, 그러니까 너의 증조할머니 역시, 엄마에게 남자친구와 맛있는 걸 사 먹으라며 용돈을 주시면서도, 엄마가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건 이상하리만치 간섭하셨지. 아무래도, 집안 내력인 것 같으니 너도 나중에 주의하렴.
그런 간섭 때문에, 엄마가 지금 남자친구가 없어서 너를 빨리 만나지 못하는 건 아니란다. 사실, 지금 엄마가 너에게 너무 이른 편지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네가 글도 읽고, 이 정도의 문장을 이해하려면 네가 태어나고 나서도 몇 년은 더 흘러야 할 테지) 엄마는 사실 삶의 중요한 순간에 와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어제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단다. 아마 그 많고 많은 생각 때문에, 연애도 잠시 미뤄두고 있지.
물론, 살면서 우리는 많은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게 되겠지만, 엄마가 올해 서른이 되면서 생각이 많아진 건 사실이야.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넘어와서 우울한 건 아니냐고? 아니, 사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지금을 기다려왔어. 웃기지? 삼십이 되기를 기다려 왔다니 말이야. 나중에 이야기해 주겠지만, 엄마가 보낸 이십 대는 정말 험난했거든.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더 많았단다.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밤보다 서른 살의 첫 번째 밤이 더 성숙해지는 것도,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엄마가 지나온 이십 대와 작별하면서, 엄마는 스스로에게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단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이십 대는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답을 찾아 헤매던 순간이었어. 정확히 말하면,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지. 엄마가 이십 대를 마무리하면서 깨달은 건, 삶에는 정답, 그러니까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 있다는 거야.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자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속에 늘 존재한다고 생각해. 방향이라는 건, 하나의 이정표일 뿐이지, 결코 끝을 얘기하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엄마는 요즘 생각이 많단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
또한, 너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줘야 할지 생각이 많단다. 지금 이대로 너에게 물려줘도 될 지에 대해서는 사실 자신이 없어. 나중에 역사책에서 너는 엄마가 겪은 이 시대를 어떻게 배울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가 매우 불안하고,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먹고사는 것 조차도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단다. 네가 만약 태어나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엄마는 상관없지만, 그것이 타의가 아니라 자의였으면 좋겠다. 너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하여 관심 가져야 할 환경이슈도 정말 많단다. 엄마는 사실 환경보호를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지만, 이제는 환경보호가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어. 기상이변도, 지진도, 자연재해도, 과거보다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세계 석학들 몇몇은 지구가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해. 엄마는 단지 네가 태어나면, 엄마가 보았던 푸르른 하늘도, 맑은 공기도, 탱글한 자두도, 시원한 바람도, 달큰한 꽃향기도, 그 밖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마는 아름다운 것들을 너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환경보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단다.
엄마는 곧 태국으로 여행을 떠날 거란다. 한 달 동안 방콕과 치앙마이를 돌아다니고 올 생각이야.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들을 뭐라고 부르냐고? '디지털 노마드'. 엄마는 그들을 만나러 태국으로 간단다. 방콕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에 참가할 예정이야. 엄마는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이 정말 즐거웠단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그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엄마는 더 자유로워지곤 해. 맞아, 엄마도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거란다. 태국에 다녀온 뒤에, 엄마의 감상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말이야. 가끔은 아주 느리고, 가끔은 아주 빠르단다. 그 이야기는, 엄마의 삶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거지. 하루라도 빨리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급하다가도 (지금도 보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너를 위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잖니) 어떤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는단다. 어느 날은 자유롭고, 어느 날은 경직되어있지. 엄마가 말해주고 싶은 건, 네가 나중에 엄마라고 부를 '나'라는 사람은 완벽하지도 않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너를 만나기 전에도, 너를 만난 후에도 많은 실수들을 할 거야.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가 아니더라도,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어. 엄마도, 너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감사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할게.
첫 번째 편지를 네가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여기서 나눴으면 좋겠다. 괜찮다면, 엄마에게도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구나. (물론, 이성친구 이야기는 생략해도 좋단다.)
엄마가
201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