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터널 & Tunnel
한국, 서울
Korea, Seoul
August 2016
감독/각본: 김성훈
원작: 소재원
제작: 어나더썬데이, 하이스토리, 비에이 엔터테인먼트
배급: 쇼박스
배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김해숙, 정석용, 조현철, 남지현, 신정근, 유승목, 이철민, 이동진, 박혁권 등
** 아래 리뷰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터널을 통과했다
도입부라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는 아주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 갑작스러운 사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터널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움과 두려움. 희망을 놓쳐버리기 쉬운 어두운 곳. 빛은 어둠을 밝히기도 하지만, 어둠을 주목하게도 만든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두 가지 시선.
그리고 하정우.
터널 밖의 소란스러움은 터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그래서 정우는 계속해서 묻지. 밖의 상황은 어떤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자신은 언제 데리러 올 건지. 터널 밖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희망을 붙들고, 터널 안으로 희망을 전달해. 하지만, 터널 안으로 들어온 희망은 어둠이라는 공간에서 빠르게 사라져 가고, 터널 밖에서의 희망은 한낮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지.
유일하게 터널 안과 밖을 연결해주던 핸드폰이 꺼지면서, 희망이라고 불리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같이 꺼져 버리고 말아. 터널 안의 정적이 오래될수록, 터널 밖의 사람들은 터널을 잊게 돼. 아니, 잊고 싶어 하지. 사람들은 정우의 죽음을 단정 짓고, 단정지은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정우가 살아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아.
피해액이 현재까지 500억이 넘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터널에 갇혀버린 정수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어 피해액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한 사람의 목숨 값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사실 이미 우리는 각자의 '몸값'을 이야기하잖아. 그 몸값이라는 거 말이야, 어쩌면 우리 '목숨 값'과 같은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나의 몸값이 연봉 3천만 원이라면, 공사 중단으로 인해 생긴 피해액 500억에 가려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피해액이 현재까지 500억이 넘습니다', 라는 그 말은 그 한 사람의 목숨 값이 저것보다 더 높은가?를 되물어보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어. 아니, 500억에 비하면 저 한 사람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기회비용적인 측면의 이야기로 들렸지.
다들 너무 지쳤습니다
국민들도 이제 그만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정우의 아내, 세현은 하도 제 2 터널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65%라는 머리글이 달린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그때, 정부 관료가 세현에게 다가와 국민들도 이제 그만하자고 하지 않느냐며, 공사 재개 서명용지를 내밀어. 그의 대사 속에는 국민이라는 것을 앞세워서 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다는 의도, 그리고 서명용지를 들고 있는 그의 손에는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스며들어있어. 그 순간 그의 옷에 달려있던 사랑의 열매 배지는 이미 그 의미가 무색해진 채로, 무력감까지 느끼게 만들었지.
불편한 책임 전가는 최반장의 급작스러운 죽음에서도 나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모인 많은 사람들. 그중에 최반장이 있었어. 하지만, 구조작업 과정에서 최반장은 사고를 당하고, 한 사람을 구하려다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기사화되기 좋은 소재로 변해버렸지. 최반장의 노모는 세현에게 찾아와 계란을 던져.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내 아들이 너 때문에 죽었다고 말이야. 세현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해. 죄송하다고... 또 죄송하다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답답한 장면이었어. 정말 죄송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타나지 않았어. 이 일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사람들은 뒤에 숨어 버렸고,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되었지. 부실공사를 한 공사 책임자가 아니라, 하필 그때 터널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가 매몰되어 버린 정수가 이 사건의 책임자가 되어 버리고, 갇혀 버린 정수를 대신해 그의 가족들이 비난을 견뎌내야 했어.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하다고, 살려달라고, 그저 도와 달라는 말밖에는 없었지.
물론, 영화가 무겁지만은 않아. 오히려 이렇게 유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 유머가 담겨있지. 하정우였기에, 그 공간에서, 그 장면에서 그렇게 재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야. '터널'이라는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정우의 연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건, 그만큼 하정우의 힘이 아니었다면 장시간 극을 끌기가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거야.
상업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김성훈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한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뒷배경으로 하고 유머를 앞세워. 유머가 사라지는 그 시점에, 뒷배경처럼 깔려있던 무거움이 한 번에 후반부를 덮치지. 만약 이 영화가 무겁기만 하고, 또는 그저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전작 '끝까지 간다'의 명성을 이어가기 어려웠을 거야.
영화가 끝나고 두 주인공이 터널을 통과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래도 터널을 통과했구나, 하는 생각 말이야. 두려웠던 긴 시간이 끝나고, 그들은 손을 잡고 터널을 빠져나가는구나.
우리가 2년 전 보고 싶었던 모습도 바로 저 장면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들이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오고, 다른 터널을 만난 순간에도 두렵지만 무사히 터널을 빠져나가는 모습. 우리가 터널 밖에서 외치는 희망이 터널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생명과 같이 매몰되어있던 두려움을 잠시라도 깨트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서로를 이어주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2년 전 우리는, 너무 빨리 희망을 놓아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비하면, 영화는 모든 것들을 과하게 설정하지 않았어. 생명에 대한 예의 없음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전달받을 수 있는 건, 그래도 결국 그들은 터널을 통과했다는 사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생명에 대한 예의'는 결국 '예의 없음을 이겨낸 생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