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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Oct 21. 2016

99일간의 기록
로그디노 진짜 이야기 1

로그디노 : 디지털 노마드 in 서울



로그디노 : 디지털 노마드 in 서울 

3개월 동안 정말 정신 탈탈 털려가며 만든 컨퍼런스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어쩌면 너무 무모했을지도 모를 저희의 도전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6년 10월 15일 

100여 명의 총 행사인원이 함께한 컨퍼런스였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30 명이 넘는 인원이 뒤풀이에 참석했다. 뒤풀이가 끝난 후, 10여 명의 사람들이 2차를 갔다. 나와 노마드씨는 뒤풀이가 끝난 후에, 잠시 카페에 앉아 지난 3개월과 그리고 컨퍼런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3개월이 정말 꿈만 같았다. 컨퍼런스 당일에 일어난 일은 더 꿈만 같았다. 아주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가벼워지기도 했다. 어떤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2차를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기쁘기만 했다. 주최자, 연사, 참가자들을 따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한데 섞인 풍경이야 말로, 우리가 정말 보고 싶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작은 3개월 전, 7월 9일 나와 애나가 나눈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다. 



16년 7월 9일 

나는 그 날 애나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를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는 그 한 마디를 나는 그렇게 뱉어버렸고, 애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나의 제안을 승낙하였다. (누구 한 사람, 그 날의 우리를 말렸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종종 생각했다....) 


지난 3월 DNX가 주최한 글로벌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에 다녀온 후에,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를 한국에서 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왔다. 실제로 행사에 참석했던 참석자들이 주최자가 되어,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컨퍼런스를 여는 풍경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고민의 끝에 우연히 노마드씨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나와 통화가 끝나고,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신 이용원 님을 통해서 연사들을 추천받았다. 우연찮게 추천받은 연사들이 거의 노마드씨가 알고 지내던 분들이었고, 연사 섭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6년 7월 11일 

처음 우리의 이름은 로그디노가 아니었다. DNX에 많은 영감을 받은 나로서는, DNX KOREA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를 원했고, 이와 관련하여 DNX와 사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마드씨에게 컨퍼런스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DNX에게 한국에서 컨퍼런스를 주최할 생각이 없는지에 대해서 물었고, DNX KOREA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컨퍼런스를 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DNX는 이미 정해진 일정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었고, 다만 행사를 진행하게 되면 서포트를 해주겠다고 회신을 주었다.   



16년 7월 17일 ~ 19일 

당시 노마드씨는 제주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체류를 하던 중이었다. 천예지 님을 비롯하여 몇몇 연사분들이 제주도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배낭 하나를 메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렇게 우리는 공항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인사를 나누었고, 바로 일모드가 되어 연사분들과의 미팅을 진행했다. 당시 우리는, 우리끼리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2박 3일 동안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같이 먹고 자면서, 우리는 전체 행사 플랜을 짜기 시작했고,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왜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를 하고 싶어요?"


나는 누군가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왜 이 일을 '나와 같이'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충분히 사전에 논의가 되지 않으면, 중간에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노마드씨에게도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마치 나를 왜 사랑하는 거야?라는 뉘앙스의 말처럼 들릴 법한 나의 질문에 노마드씨는 아래와 같이 답을 해주었다.  


제시 : 실행하고, 서포트하고,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루시 :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재미있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포인트예요. (해먹에서 누워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남) 

애나 :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요.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은지 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처음부터 우리는 컨퍼런스를 통해서 수익을 벌어들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물론, 3개월 동안 투여해야 할 노동과 시간의 양을 미리 짐작했더라면, 누군가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사실 몰랐고, 어쩌면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예지 님, 김외솔 대표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님, 박산솔님과의 개인 미팅까지 가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미팅을 할 때마다 받는 피드백은 굉장히 유용했다. 마음만 앞섰던 우리에게 행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고, 행사를 시작하려는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제주도에서의 2박 3일 로그디노 워크숍은 그렇게 끝났다. 그 후에 우리는 모든 행사 준비를 온라인을 통해서 진행했다. 컨퍼런스 당일이 되어서야, 모든 준비를 마치고 노마드씨를 다시 서울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진행해야 하는 미팅과 일들을 처리했고, 애나는 제주도와 광주에서, 제시는 성남에서, 루시는 울산과 서울에서 일을 진행했다. 4명의 팀원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을 하고 있던 노마드씨팀에 내가 합류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온라인을 통한 협업을 시작했다.



16년 7월 25일 

행사를 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장소 대관이었다. 서울에서 장소를 대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서울에 있는 많은 장소들의 대관료가 상당히 비쌌다. 선택의 여지없이 무료 대관을 해주는 곳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행사 경험이 많은 홍순성 소장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종적으로 구글 캠퍼스와 디캠프가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구글 캠퍼스의 경우에는 토요일 오후 4시까지만 운영을 하는 관계로 이용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디캠프는 오후 6시까지 운영을 했지만, 이번엔 예약승인이 나지 않았다. 디캠프 정책상 한 달 이내 행사만을 승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장소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든 것들이 모래성 쌓기에 불과했다. 우리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무엇인지, 왜 컨퍼런스를 하려고 하는지, 왜 디캠프라는 장소가 우리에게 필요한지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미팅을 잡았다. 당시 서울에 있던 내가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우리는 부랴부랴 행사 소개자료를 만들었고, 디캠프 전연호 팀장님과의 미팅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디캠프 투어를 하고 나니, 더더욱 디캠프에서 행사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간절함은 통했고, 며칠 후 행사 승인이 떨어졌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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