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가난으로 보는 한국 정치
- 도둑맞은 가난으로 보는 한국 정치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둑맞은 가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을 읽은 건 아주 오래전이다. 교과서에 실려서 읽은 것인지, 아니면 도서관에서 집어 들고 온 것인지 정확히 기억에는 없다. 기억나는 건, 내가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세상을 보던 시절이었다는 것. 그런 내가 그녀의 글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바로 그녀가 표현한 '가난' 때문이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한 번도 가난을 훔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누가 가난을 훔친단 말인가. 나에게는 집안 사정을 말하기 부끄러웠던 시기가 유독 많았다. 친구들을 데려오기 좋아하던 내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오면 안 되는 상황도 종종 있었다. 문을 두드리면 집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 나는 한 번도 누군가의 가난을 탐내본 적이 없다. 내게 가난은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고,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무언가 바란다는 것이 욕심으로 직결되는 행위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흉내 내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난은 삶이기 때문이다. 구멍 난 양말처럼 나에게 가난은 느닷없는 곳에서 튀어나와 마주해야 하는 얼굴 벌게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내가 느낀 가난이었다. 물론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런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것이 한국에서의 가난이기도 했다. 나는 소득이 얼마밖에 되지 않으니 지원을 해주세요, 나는 부양할 가족이 이렇게나 많으니 혜택을 조금 더 주세요,라고 치사하지만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얄팍한 지원금도 받기가 어려웠다.
그런 요즘 '도둑맞은 가난'이 스멀스멀 다시 떠오르게 된 건, 다름 아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보여주기 식 정치행보를 펼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때문이었다. 물론, 곧 정치행보를 시작하게 될 차기 대권주자들 역시 명절을 맞아 시장을 오고 갈 테고,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국수 한 그릇을 먹든, 어묵을 하나 집어 들든 그렇게 또 보여주기 식 행보를 할 것이다. 하지만 유독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는 참 단기간에 서민들의 삶을 훔치고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꽃동네에 가서 턱받이를 하고 할머니에게 미음을 먹이고, 편의점에 우르르 몰려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퇴근길 지하철에 억지로 끼어 타서 시민들의 불편한 외침도 모른채하고, AI 발생지역에 가서 방역 체험을 하고 오고, 취업이 힘든 학생들에게 여전히 노오오오력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召命)이다. 거기다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둑맞은 가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원래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보는 이도 어색하고, 하는 이도 어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시기만 다가오면,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을 훔치기 위해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가난 장난.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서민 장난. 바로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보여주던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정치인들의 서민 장난은 지칠 줄을 모른다. 그런 서민 장난에 박수 쳐주고 있을 만큼 서민들의 삶 역시 녹록지 않다.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둑맞은 가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깜깜한 절망.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건 그들이 더 이상 우리의 희망을 훔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잠시 잠깐 하는 그런 행동들로 인해서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앗아가는 행보를 더 이상 정치인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아무리 흉내 내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이며 희망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헤집고 지나간 곳은 우리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으로 다가온다. 차기 대권주자로 나서는 사람들의 행보가 서민 장난뿐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도둑맞은 우리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