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아침이 되면 출근을 했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했다. 일이 많으면 야근을 했고, 야근이 길어지면 새벽까지 집에 못 들어가는 일도 많았다. 일이 끝나서가 아니라,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니 집으로 퇴근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늘 아침마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했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일이 많은 날에도, 나는 구두를 신었다. 회사에는 늘 일이 많았다. 회의가 길어졌고, 연차가 쌓이면서 내가 결정해야 하는 사항들도 많아졌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나는 시간에 쫓겨 살았다. 시간에 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있는 힘껏 달렸다. 시간도 있는 힘껏 달려왔다. 시간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그런 시간이 무서워졌다.
"언니 우리 편백나무 숲에 먼저 가볼래요?"
"좋아요."
아정은 아침에 말린 머리를 뒤로 묶었다. 흰 셔츠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만 있을 뿐 정확히 누구와 닮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나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에서는 산책할 일이 별로 없어요. 물론, 공원도 많이 있지만 쉬는 날에는 너무 피곤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져요."
그녀는 나무를 보며 이야기를 건넸다. 듣는 이는 나 한 사람뿐이었지만, 마치 이곳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에게 안부를 전하듯 그들을 보며 이야기를 했다.
"혼자 여행하는 거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아정 씨는요?"
"전 별로 안 좋아해요."
"근데 왜 혼자 통영에 왔어요?"
"미래사 때문에요.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에 들어왔는데, 미래사가 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짐 싸서 버스 타고 왔어요."
"그런데 왜 미래사부터 보러 가지 않고 편백나무 숲부터 온 거예요?"
"보고 싶은 마음을 조금 더 꾹꾹 참는 거예요. 그래야 미래사에 갔을 때 (숨을 쉬고) 마음이 폭발할 테니까요."
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는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그것도 미래사를 바로 앞에 두고 그녀는 편백나무 숲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편백나무숲도 미래사의 일부라고 볼 수 있겠지만. 숲 속엔 우리밖에 없었다. 공기가 하나하나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와 숲을 만지고 갔는지, 나무들이 흔들거린다. 숨어있는 바람이 내게도 불어왔다. 산책로 끝에 모셔져 있는 미륵불.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져있는 바다. 눈을 감으면 이곳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다는 고요했다. 아정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뿌리 없는 나무를 베어서 대들보를 올리고, 그림자 없는 나무를 꺾어서 도리와 서까래를 걸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으로 기와를 삼고, 메아리 없는 골짜기의 진흙으로 장벽을 만들도다. 사방에 문이 없어 드나듦이 없지마는 시방세계에서 모두 모여도 넓지도 않고 비좁지도 않도다.
- 효봉선사의 미래사 상량문
아정은 미래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도 했고, 무겁기도 했다.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듯 무겁게 한 걸음 떼었다가도, 마음이 먼저 그곳을 향했는지 달려갈 듯 가벼웠다. 아정은 그렇게 나보다 앞서 겄다가 휙돌아 나를 바라봤다.
"언니 그거 알아요? 효봉스님이라는 분이 법정스님의 스승님이신데요. 원래 통영을 올 생각이 아니라 여수를 가려고 하셨데요. 근데 뱃멀미 때문에 통영에 내리시게 된 거래요. 너무 재밌지 않아요?"
"몰랐어요. 그런 이야기가 있는 줄은."
"만약 그때 여수로 갔다면, 지금의 미래사는 없었겠죠?"
미래사로 걸어 들어간 아정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그곳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정을 두고 천천히 걸었다. 어디선가 법정 스님이 물을 기르고 밥을 할 것만 같았다. 수많은 삶이 이곳에 머물다 사라졌다. 그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가 좋았다. 하다못해 뱃멀미를 하는 바람에 여수를 가지 못하고 통영에서 내렸다는 효봉스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이곳을 찾아왔던 우리의 모습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이야기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지금 이 순간을 남겨놓고 싶었다. 지금의 이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을지라도 말이다.
통영 함께 떠나볼래요?
feat. 먹고, 여행하고, 예술하라
2017.04.28 ~ 04.30 (2박 3일)
참가신청 : https://goo.gl/V69G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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