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나는 화를 잘 안 낸다. 불평을 하는 때도 있지만, 하고 나면 곧잘 후회한다. 별일 아니었는데 불평하고 화를 냈구나, 하면서 말이다. 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나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나를 괴롭게 했던 일들도, 나를 즐겁게 했던 일들도,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도, 결국은 모두 지나갔다. 나의 감정이 큰 폭으로 진동하지 않는 이유다. 감정의 진동은 삶을 진동케 하고, 삶이 흔들리면 정신도 마음도 흔들린다. 나는 나를 위해서 주변의 요동치는 많은 상황들을 진정시킨다. 끝나지 않는 진동은 나의 세계에서 추방시키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더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내 안으로 집어넣지는 않는다. 그 '왜'가 나를 괴롭게 하지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그 '왜'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왜 저 사람은 나에게 저런 행동을 했을까?' '왜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일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등등. 종종 '왜'는 나를 향한 자기비하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그 질문이 끝나지 않아 나의 모든 삶을 정지시켜 놓기도 했었다. 아주 쉽게 말이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나의 삶이 종종 그 '왜'라는 질문에 막혀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고, 결국 그것에 대한 해답이 나를 향한 절망으로 치닫는 것이 나를 더 숨 막히게 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많은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사라진다. 내가 처리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불만을 들을 때도 있고, 어떤 일을 한 번 해보자는 제안도 있고,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아직 결과를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일정 부분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애초부터 누군가를 전부 이해할 수없다, 라는 전제를 안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에 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경험에 따른 많은 데이터를 통해 여러 옵션 중 하나의 옵션을 선택한다. 사람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그 대응방법은 한 번에 끝나기도 하고, 여러 차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원만하게 그 일이 해결되지 않을 때, 또는 이해되지 않는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질 때는 모든 대응을 중단시키고 관계를 정리한다.
핸드폰이 잠시 12시간 동안 꺼져있던 적이 있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마치 번호표도 뽑지 않고 창구로 달려드는 사람들처럼 나에게 자신의 일을 먼저 봐달라는 메시지가 쉬지 않고 핸드폰을 울려댔다. 물론 그들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연락을 받았는지 모른다. 단지 그들은 내가 필요해서 연락을 했을 뿐. 진행하는 행사의 클레임 처리 건이 있었고, 내가 처리하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일의 답장을 재촉하는 건이 있었고, 새롭게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협의하는 건이 있었고, 안부를 묻는 건도 있었으며, 그 와중에 내 친구는 출산 임박 소식을 알렸고, 집에는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내 의견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고, 하물며 반품 택배 기사한테까지도 연락이 와있었다. 그날따라 나는 너무 늦게 일어났고, 이제 겨우 핸드폰을 켰을 뿐인데 세수를 하기도 전에 날아드는 연락들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나는 새삼 내가 얼마나 많은 일들에 연관되어있는지 깨달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대응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렇게 핸드폰을 붙잡고 나는 하나하나 대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스트레스였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대화들이 별로 없었다. 통화가 필요했고, 고민하며 대답을 해줘야 하는 건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게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은 다 지나간다.'
말 한마디에 가슴 졸이고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감정이 격해져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던 때도 있었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때로는 즐거운 감정이 타인과 유착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감정이 널뛰기를 하면 할수록 얼마나 많은 일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나를 파괴한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그러려면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나를 돌아봐야 했고, 상대방의 태도를 살펴야 했다. 관계 속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감정의 날이 쉽게 들어오지 않도록 경계했다. 하지만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 사적인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내가 전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과 사건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때마다 흔들렸고, 흔들릴 때마다 고민했다. 타인이 나를 파괴하고 있던 것이다.
타인이 나를 파괴하게 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고,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감정이 격한 건일 수록 바로 대응하지 않았다. 물론 최악의 경우 상대방은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이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피해자, 그리고 나를 가해자로 확고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최악의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 템포 쉬어간다. 상대방에게 해야 하는 말을 고르고, 상황을 돌아보고,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며, 최종적으로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타인이 나를 파괴하게 두지 않는다. 관계가 끝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나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쫓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일 나를 위해 살아간다. 그렇기에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나에게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한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