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택시운전사 & A Taxi Driver
감독 : 장훈
제작 : 더램프(주)
배급 : (주)쇼박스
배우 :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박혁권, 최귀화, 차순배, 엄태구 등
최근에 두 편의 영화를 봤다. 모두 결말을 아는 내용이었고, 하물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도 충분히 짐작되는 영화였다. 단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가 궁금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스크린 밖에 앉아있는 나는 그것을 알려줄 수 없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방관자가 되어 그들을 지켜봐야 했다. 그들이 희망적이면 희망적일수록 이 모든 상황이 비극이라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들의 웃음은 불안했고, 평온함은 서글펐다.
1980년 광주.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진실은 왜곡됐고,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다. 정보를 차단하기가 지금보다 더 쉬웠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은 빈틈없어 보이는 그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만섭의 시선 그리고 또 하나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록했던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만섭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이 되고, 관객의 시선은 만섭과 함께 광주에 들어간다.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짙어지고, 변화된 감정은 만섭의 시선을 다르게 비추기 시작한다. 반면,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광주의 현장을 기록한다. 기록 그 자체가 감정이 되고, 감정 그 자체가 기록이 된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영화는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기보다는 두 개의 시선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더 주목해야 되는 영화다.
서울에서 택시를 운전하던 만섭은 우연히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에 가게 된다. 만섭은 오로지 밀린 집세를 해결할 생각밖에 없고, 위르겐 힌츠페터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광주의 사건을 알리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목적이 다른 두 사람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절 광주에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만섭은 평소 할 일없고 생각 없는 청년들이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뉴스가 그렇게 이야기했고, 그의 주변에는 그런 일에 연루되는 사람들이 없었다. 게다가 시위가 있는 날이면 택시를 타는 손님들이 줄어들어, 그에게는 오로지 "시위 = 불편"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런 그가 광주에 도착했다고 하여 평소 가진 생각이 단숨에 바뀔 리 없었다. 그렇기에 만섭은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이곳은 위험하니 어서 서울로 돌아가자는 말을 반복한다. 위험한 곳. 그곳이 바로 광주였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만섭의 택시 안에서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을 찍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비를 서고 있던 군인들을 보고 카메라를 감춘다. 광주에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황량한 광주 거리부터, 그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하나하나 담아낸다. 그날의 광주가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에 의해 기록된다. 감춰져 있던 곳. 그곳이 바로 광주였다.
만섭의 시선은 광주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 그에게 친절을 베풀던 광주 사람들이 무참한 폭력에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다른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위르겐 힌츠페터를 돕는다는 사실만으로 자신 역시 쫓기는 신세가 되자, 그는 더욱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한다. 평소 할 일 없고 생각 없는 청년들이나 참여하는 것이 시위라고 생각했던 그는 진실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를 도망치게 만든다. 알기에 더욱더 도망치고 싶은 곳. 그곳이 바로 광주였다.
총알 한 방에 목숨 하나. 그들은 정확했고, 무기도 있었으며, 누구보다 강했다. 단지, 그들의 총구가 향한 곳이 시민이라는 사실만이 이 현장을 더욱더 참혹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기 시작했고, 그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 역시 바닥에 쓰러졌다. 살리기 위해 알려야 했고, 알려야 했기에 살아야 했다.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는 더 가까이 그들의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사건이 아니라 그 날의 사람들을 담아냈다. 진실을 밝혀달라 소리쳤던 그곳. 그곳이 바로 광주였다.
함께할 수 없을 거 같았던 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의 시선은 어느새 하나로 합쳐진다. 이방인이었던 서울의 택시기사와 독일 기자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참혹한 현실을 같이 겪으며 하나의 감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그들은 살아야 했다. 많은 이들의 희생을 뒤로하고서라도 살아남아 광주를 빠져나와야 했다. 두려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들을 잡으려는 군부도 게으르지 않았다. 게으르지 않은 그들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그들은 더 부지런해야 했다. 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의 시선은 어느새 공항을 향했고, 그날의 진실은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에 의해 밝혀졌다. 생과 사를 함께했던 곳. 그곳이 바로 광주였다.
극 중 만섭은 위르겐 힌츠페터에게 자신을 '김사복'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준다.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택시운전기사를 김사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그 사건 이후로 한 번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영화에서 추측하는 대로 이름을 잘못 알려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그들을 쫓는 눈은 많았고, 택시운전기사는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특별해지고 싶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자 거짓으로 알려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당신을 다시 만난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을 거 같아요
당신의 택시를 타고 변화된 대한민국을 보고 싶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생전 위르겐 힌츠페터가 택시운전사 김사복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마지막 음성이 영화관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변화된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2016년 1월 사망했다. 다만, 그의 유해 중 일부만이 광주 망월동 5 · 18 옛 묘역에 안치됐다.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의 모습을 보자, 얼마나 그가 그날을 특별하게 기억하며, 김사복이라는 인물에 대한 우정 또한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송강호와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가 아니라, 실제 그들의 이야기에는 더 많은 감정이 녹아져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좀 더 토마스 크레취만이 감정연기를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르겐 힌츠페터를 연기한 토마스 크레취만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위험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목숨을 걸고 광주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던 위르겐 힌츠페터의 역할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쉬움이다. 토마스 크레취만이 만약 더욱 몰입하여 연기를 해줬더라면, 마지막 엔딩컷에 나오는 실제 위르겐 힌츠페터와 오버랩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렸을 것이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생사를 함께했던 두 이방인의 우정은 분명, 만섭의 시선과 함께했던 관객들에게는 알 수 없는 뜨거움으로 다가왔을 테니까 말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두 인물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대학가요제를 나가는 게 꿈인 구재식,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고자 했던 최기자, 그리고 만섭과 위르겐 힌츠페터가 누구인 줄 알면서도 보내줬던 박중사 등.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많은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서도 흐른다. 다만 안타까웠던 건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오히려 초점이 흐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이 깊게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할까? 또는 스케일 있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들이 너무 작게 연출되어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다.
광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기존에도 많았다. 그날의 역사는 아주 많은 이들에 의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건을 재구성하여 그날을 기억하는 데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날의 감정을 더 깊게 파고드는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말을 모두 아는 영화에서 관객들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더 이상 그날의 사실이 아니라, 그날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감정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