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싶은 따뜻함 '따뜻해따뜻해'
모든 활동을 온라인으로 옮기고 있던 내가 오프라인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내게 온라인은 미래였고, 오프라인은 과거였다. 그랬기에 나는 점점 더 온라인에 최적화된 사람이 되어가려 노력했고, 오프라인에 머물러있는 사람들은 과거라 여겼다. 아주 쉽게 그런 오류가 내 안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아날로그'라는 말이 마치 트렌드처럼 등장하기 시작했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많은 활동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내 모든 활동들이 옮겨간 것은 아니었다. 나의 오감을 자극하는 일들은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더 많이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전자책을 만든다. 종이책은 재고부담도 많고, 자금적인 측면에서도 내가 감당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 그런 내가 종이책을 만들고, QR코드 엽서북을 만들게 된 것은 온라인의 한계성 때문이었다. 내가 전자책을 시작했을 때, 전자책과 종이책의 미래가 많은 이들에 의해 점쳐졌다. 전자책은 미래, 종이책은 과거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독자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는 때로 기술력을 앞세워 인간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쉽게 잊게 된다. 전자책은 새롭다.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며, 수백 권의 책을 하나의 기기에 담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롭다는 건, 때론 익숙함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종이책은 종이의 역사와 함께 아주 오랫동안 익숙한 것이었다. 그 익숙함이 곳곳에서 새로움으로 표현되어졌던 많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나는 새로움을 쫓았던 사람이었지만, 익숙함에 밀려 내가 만드는 것들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고, 내게는 이미 익숙해져 버린 '새로움'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어느 날 그 고민의 끝에서 만들게 된 것이 QR코드 엽서북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엽서에, 전자책이 들어있는 QR코드를 넣어 하나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이 아이디어가 있기까지 '플라스틱 티켓'의 도움이 컸다. (플라스틱 티켓은 디지털 콘텐츠의 다운로드가 가능한 PVC카드를 제작하는 독립출판 프로젝트로 현재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 중이다.) 디지털 콘텐츠를 오프라인으로 꺼낸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으나, 플라스틱 티켓 프로젝트를 보고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전자책을 선물할 때 벌어지는 아주 일상적인 패턴을 잠시 설명하도록 하겠다. 전자책을 선물하면, 우선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전자책을 선물한 사람들은 많지만,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너무 많아서 전자책을 선물하는 게 때로는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전자책을 어떻게 읽는지 설명하는 매뉴얼을 서점사별로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우선 선물 받은 전자책을 읽으려면 전자책을 선물한 서점사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야 하고, 가입을 해야 하고, 어플 안에서 구매 목록을 찾아야 하고, 찾은 다음에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야 한다. 물론 첫 단계를 거치기만 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자동 로그인이 되어있을 테니 구매 목록에서 다운로드해서 읽어주기만 하면 된다. 종이책을 선물할 때의 패턴은 어떻게 될까? 종이책을 선물한다 -> 읽는다, 끝. 생각 이상으로 차이가 많다. 전자책이 과연 간편한가? 편리한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전자책이 익숙한 상태에서는 그 간편함과 휴대성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겠지만, 전자책이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그 대답이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QR코드 엽서북은 어떨까? QR코드를 넣은 엽서북은 아직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QR코드가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 역시 종이책에 비하면 익숙하지 않기에 설명이 필요하다. QR코드 엽서북은 QR코드 스캐너로 엽서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
종이책에 비하면 한 단계가 더 있지만, 전자책에 비하면 가입과 로그인 과정이 없어 편하다. 물론, QR코드는 복제가 너무나 쉽기 때문에 만든 노력에 비해 여기저기 그 저작물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안 벌어지기를 독자들에게 부탁하는 바이지만, 잘 만들어놓고 온라인 서점에서 매일같이 독자들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선물하기도 편하고, 사람들에게 더욱 다가가기도 쉬우니 말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면, QR코드 엽서북을 선물하곤 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온라인에만 머물러있던 콘텐츠를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와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를 만나는 일이다. 소비자와 닿지 않으면 콘텐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드는 건 작품일 수도 상품일 수도 있지만,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누군가에게 닿기를 원한다. 어떤 것이 미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닿지 않으면 어떠한 미래도 꿈꿀 수없다고 생각한다.
글 : 문은지 / 그림 : Peevee
출판사 : 더심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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