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잉 웨스트> 1장. 두려움이 끓어오르는 밤
4월 마지막 토요일 밤, 나는 치앙마이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 앞에 앉아 길 건너 창프악대문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유구한 도시의 옛 성벽은 700년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고 토막토막 잘렸다.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 안에서는 강렬한 재즈 피아노 선율이 붉은 벽에 그린 인도 라자스탄 덩굴줄기를 감싸고 올라가 실내를 휘돌았다. 아주 오래된 성당이나 사원에서 볼 법한 그림. 어떤 사람은 문신 가게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나는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에서 3년 동안 색소폰을 연주했다. 몇 달 전까지 내 인생은 복잡하게 꼬여서 문제가 많았다. 내 문제를 여기서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문제들. 사랑. 또는 돈. 그런 문제를 귀담아 듣고 싶어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문제들 덕분에 나는 또한 영감을 찾으러 저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영감이 동났고, 나조차도 감동을 느낄 기력이 없었다. 석 달 전, 프랑스인 뮤지션 친구 빈센트가 6월에 파리에서 음악 축제가 열리는데 공연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파리로 가겠다고 즉시 대답했지만 비행기 표를 살 돈이 없었다. ‘비행기로 갈 수 없으면 차로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행자들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경로를 알아보다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는 게 가장 적당하다는 걸 알아냈다. 비자는 두 나라만 미리 받아 놓으면 됐다. 중국과 유럽 솅겐 비자. 기차로 여행하면 숙박비를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 두어 달 여행 경비로 어림잡아 20,000바트면 충분할 것 같았다.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두 달 내내 비자 서류를 준비하면서 되도록 여러 가지 일을 미리 처리하고 일정을 대충 정했다. 출발은 4월 마지막 일요일.
“뻐 상, 거기는 어떻게 가려고요?”
같은 밴드 기타 연주자 히로끼가 물었다.
“겁을 먹고 여행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한 뒤에 고속도로 갓길에서 히치하이크를 해서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 주(州) 치앙컹까지 가고, 거기서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서 북쪽으로 올라가 중국으로 갈 겁니다. 계속 베이징까지 올라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어떻게 타는지 알아낸 다음 그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서, 거기서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이용해 유럽으로 갑니다. 라트비아, 폴란드, 독일, 벨기에를 거쳐서 파리에 도착하는 거죠. 가는 길에 사람들도 만나고 아름답고 멋진 경치도 감상하고 마지막에는 예쁜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그야말로 해피 엔드! 자, 내 계획이 어때요?”
“재밌겠는데요. 그런데 파리까지 못 가거나 중간에 돈이 다 떨어지면 어떡해요?”
“돈이 다 떨어지면 색소폰이 있잖아요. 길거리 연주를 하면 되죠. 아마 굶어죽진 않을 거예요.”
“돌아올 땐 어떻게 하려고요?”
“아직 모르겠어요. 그건 우선 도착한 다음에 생각하려고요.”
“잘 다녀오세요. 어쨌든 행운을 빕니다. 몇 달이 걸리든지 뻐 상이 돌아와서 다시 같이 연주할 날을 기다릴게요. 간바 떼 구다 사이 뻐 상.”
무더운 밤, 내 마음은 더 뜨겁다. 두려움과 불안이 끓어오른다. 남들 앞에서는 다 잘될 거라고 자신했지만 지금 고백하건대 나는 두려웠다. 실패할까 봐. 파리에 도착하지 못할까 봐.
그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 https://www.tumblbug.com/blowingwest
드디어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태국 치앙마이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 "뻐(Opor)"의 첫 번째 책. 치앙마이부터 파리까지 2300킬로미터를 기록한 41일 동안의 그의 도전기
판형 : 128 x 182 mm
페이지 : 250 페이지 내외
글 : 파라논 판암누와이 / 옮김 : 최요한 / 제작 : 더심플북스 / 북디자인 : 김현주
표지 : 해당 표지는 추후 변경될 수있습니다.
1981년 2월 15일에 치앙마이에서 태어났다.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산업미술학부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건축가로 일을 시작했다. 독학으로 익힌 색소폰 실력으로 대학 밴드에 들어갔고, 장학금을 받고 뉴욕에서 재즈를 공부했다. 이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음악과 예술의 식견을 넓혔다. 2007년, 파라돈은 치앙마이에서 친구 러셀과 공동으로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을 열었다. 현재 노스게이트 재즈 클럽은 전 세계 뮤지션들이 모여서 함께 연주하고 음악적 경험을 나누는 곳이 됐다. 2009년, 파라돈 판암누와이는 영감을 얻기 위해 치앙마이를 떠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파리까지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