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식당
핫케이크 & 무화과 디저트 2

문은지 연재소설

by 시오




[연재소설] 그녀의 식당 - 핫케이크 & 무화과 디저트 2


핫케이크가 접시에서 거의 사라져갈 때, 그녀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무화과를 꺼냈다.


"무화과 좋아해요?"

"무화과요?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그럼 오늘 한 번 먹어봐요. 수아 씨가 온다고 해서 무화과 디저트를 준비해봤어요."


그녀는 얼려두었던 무화과를 꺼내어 그 위에 리코타 치즈를 올렸다. 인터넷에 올라온 레시피를 따라한 것이었는데 방법도 간단하고 맛도 좋아, 무화과 철이 되면, 한 번씩 무화과 디저트를 만들곤 했다. 그녀는 식탁 위에 무화과 디저트를 올려놓고는 수아에게 먼저 먹어보라고 권했다. 작은 스푼으로 리코타 치즈와 무화과를 먹어본 수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맛있다는 그녀의 표현이었다.


"맛있어요. 셔벗 같은데요?"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요. 무화과랑 흑설탕을 프라이팬에서 십분 정도 조렸다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으면 돼요. 리코타 치즈를 올려도 좋고, 그냥 먹어도 맛있어요."


무화과 디저트를 먹는 사이에, 그녀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었다. 침묵이 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지만 음악을 듣느라 둘 사이에 대화가 끊기지는 않도록.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결혼까지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처음엔 일이 너무 바빠서 저와 같이 보낼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결혼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중에 얘기하자며 피하곤 했죠. 저는 그게 너무 서운해서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저에게 잠깐 시간을 갖자는 거예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그에게 이유를 말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매달리고, 또 매달렸는데 그는 더 이상 저를 보면서 웃지 않았어요."


수아는 잠시 숨을 고르며,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스푼을 만지작 거렸다. 스푼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수아를 위해서 원하는 대로 있어주었다.


"그의 회사에 찾아간 적이 있었어요. 예쁘게 차려입고, 간식도 준비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들었을 때, 그가 다른 동료들하고 웃으면서 커피를 들고 오는 걸 봤어요. 그가 웃더라고요. 그는 절 보지 못했고, 저는 그를 부르지 못했어요. 저는 울어버렸어요. 예쁘게 차려입은 제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어요."

"그에게 다시 연락은 했어요?"

"아니요. 우리 둘 다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는 제가 그 날 회사까지 간 것도 모르니까요. 저는 그 날 그의 번호를 지웠어요. 제가 너무 안쓰러운데, 저는 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겨우 그의 번호를 지우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수아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잠시 어깨를 들썩 걸렸다. 그리고 끝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수아에게 티슈를 건네주었고, 그리고 가만히 있어주었다.


"그가 자꾸 생각이 나서 이사도 했어요. 그가 모르는 곳으로 멀리 가고 싶었는데, 저는 그렇게 멀리 가지도 못했어요. 혹시나 그가 저를 찾아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에요. 참 바보 같죠?"


수아가 이야기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는 밀크티를 한 모금 더 마셨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간은 정지된 채로 수아에게 멈춰있었다.


"지우고 싶으면 지우고, 지우기 싫으면 지우지 말아요."

"네?"

"수아 씨가 그를 지우고 싶다면, 있는 힘껏 그를 수아 씨 마음에서 지워버려요. 그런데, 수아 씨가 지우기 싫다면 그냥 잠시 수아 씨 마음에 있도록 둬요."

"잘 모르겠어요. 한 편으로는 그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가 너무 미워서 보고 싶지 않아요. 회사까지 찾아가서 만나기 전에는 그가 정말 원하는 게 말 그대로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가 멀리서 웃는 모습을 봤을 때 저는 생각했어요. 그가 원한 건 이별일 수도 있겠구나 라구요."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수아 씨가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이제 정리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해요."


수아는 아무 말없이 이제는 더 이상 따듯하지 않은 밀크티가 담긴 컵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안고 있었다. 더 이상 따듯하지 않은 자신의 사랑을 감싸 안고 싶은 마음이 거기서도 드러났다.


"사실, 붙잡고 싶어요. 그가 다시 돌아와서 예전처럼 같이 웃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그를 붙잡아야 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붙잡고 싶으면, 다시 한 번 그를 붙잡아요. 그리고 그에게 확실하게 물어봐요. 지금 그가 원하는 게 이별인 것인지 아니면 얼마간의 시간을 갖은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인지. 만약, 그가 더 이상 수아 씨하고 만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때는 그를 놓아줘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수아는 컵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을 스르르 풀었다. 감싸안는 법도 놓아주는 법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아에게 따듯한 차를 준비해주었다. 꽃향기가 나는 차였다.


"나는 누군가와 관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나의 모든 감정을 다 쏟아부어요. 남아있는 감정을 우리는 '미련'이라고 부르잖아요. 나는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해요. 감정을 남김없이 쓰고 나면, '아 이제 끝났다'하고 두 손 들어버리는 거예요. 수아 씨, 최선을 다해서 붙잡고 최선을 다해서 놓아줘요."


꽃향기가 나는 차는 붉은빛을 뗬다. 수아는 한 모금 마시고 따듯한 온기에 조금 힘을 입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이제 조금은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어요."


우리는 사랑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마음 다쳐가면서 배우곤 한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기란 그래서 어렵다. 뜨거운 물에 혀를 데인 적이 있는 사람은, 조심하는 법을 배우기 마련이니까. 뜨거운 물에 다시 혀를 델까 봐 손으로 컵의 온도를 측정해 보기도 하고, 바로 마시지 않고 조금 기다렸다가 마시기도 하고, 아주 조금 입으로 가져가 마시기도 한다. 우리의 사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수아가 떠난 뒤에, 테이블을 닦고 설거지를 했다. 다음 손님이 수아가 떠난 그 자리에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할지 그녀는 알 길이 없었으나, 맛있는 불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이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