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지 연재소설
[연재소설] 그녀의 식당 - 보리차 & 불고기 1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검은 머리색이 그녀를 조금 더 젊어 보이게 만들어 주기는 하였으나,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이 세월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식당을 찾은 사람은 혜자였다. 누구의 엄마로 불리던 시절을 지나, 누구의 할머니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해진 그녀의 이름은, 병원에서나 제대로 된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 식당 맞아요?"
혜자는 오늘 예약된 손님이 아니었다. 그저, 길을 지나다가 다리가 아파 잠시 쉴 곳을 찾았고, 그것이 우연히도 그녀의 식당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점심을 마련하기 위해 뒤돌아서 있다가, 혜자가 문을 열고 오는 소리에 손에 있던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뒤돌아섰다. 그녀는 잠시, 여기는 일반 식당이 아니며, 예약된 손님만 받는 곳이라며 이래저래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느꼈다. 때마침, 그녀도 점심을 혼자 먹어야 했고, 1인분에서 2인분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 맞아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잠시 서있던 혜자는, 그녀의 대답에 앞에 있던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혜자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금세 그런 풍경에 녹아들었다.
"여기는 뭐 팔아요?"
"오늘은 불고기를 팔고 있어요. 불고기 괜찮으세요?"
불고기를 판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오늘 점심 메뉴가 불고기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설명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좋아요. 그런데 1인분도 가능해요?"
"네, 가능해요. 그런데 제가 아직 식사를 안 해서 그러는데, 괜찮으시다면 같이 드실래요?"
혜자는 사실 식당 주인하고 식사를 해본 기억이 한 번도 없어서, 그녀의 제안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이따금 이렇게 혼자서 외출을 하는 날이면 혼자서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한 번도 식당 주인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혜자는 같이 밥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식당 주인이 자기 먹을 거를 만들면 더 맛있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혼자서 일하나 봐요?"
"네. 그래서 테이블도 하나밖에 없어요."
혜자는 그녀의 대답에 몇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었지만, 더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될까 하여 그저 가만히 있었다. 자세히 둘러보니, 식당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메뉴판도 없었고, 카운터도 없었고, 흔히 식당에서 볼만한 풍경들이 없었다. 대신에 그 자리에 한쪽에 책상이 있었고, 컴퓨터가 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불고기가 얼마인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값을 비싸게 부르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이미 뚝딱뚝딱 만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안 먹겠다고 이야기할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다리가 아파서 다시 또 밖을 나가 헤매느니, 그냥 앉아있자고 생각했다. 그런 혜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보리차를 가져왔다.
"보리차예요. 차게 드시는 것보다는 조금 미지근하게 드시는 게 좋을 거예요."
"고마워요. 보리차도 오랜만에 마시네"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재워두었던 불고기를 꺼냈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청주, 참기름 등으로 이미 양념장을 만들고, 준비된 양념장을 소고기에 붓고 30분 정도 재워둔 상태였다. 양파 한 개,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썰고, 대파와 팽이버섯까지 썰었다. 뚝딱뚝딱 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식당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사장님은 식당도 하면서 딴 것도 하나 봐요?"
사장이라는 단어가 여간 생소하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뒤돌아서 있던 그녀의 웃음을 혜자가 볼리 없었고, 웃음을 정리한 후에 그녀는 뒤돌아서서 혜자를 바라봤다.
"여기 보니까, 컴퓨터도 있고, 저기에는 그림들도 걸려있고, 다른 식당들하고는 좀 다르네요."
"네, 손님이 없는 날에는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림도 그리고, 바느질도 해요."
"좀 특이하네."
"그런데 할머님은 이 주변에 사세요?"
"나요? 아니, 둘째 딸네 집에 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여기까지 왔지 뭐예요. 사실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시 들어온 거라오."
"아, 그러시구나. 댁은 어디신데요?"
"나는 도봉구 쪽에 사는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길을 좀 헤맸지 뭐요. 나중에 나갈 때, 길 좀 알려줄 수 있어요?"
"그럼요, 큰길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아이고, 그럼 나야 고마운데 사장님이 너무 귀찮은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산책도 할 겸 다녀오면 돼요. 그리고 그렇게 멀지 않아요. 걸어서 5분만 가시면 돼요."
"고마워요."
혜자는 그녀의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연신 그녀가 조금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혜자가 들어온 그녀의 식당은 분명 혜자가 여태 들어와 본 적 없는 식당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혜자는 배가 고팠고, 길도 모르는 터라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혜자는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시면서, 뒤돌아서서 불고기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