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식당
보리차 & 불고기 2

문은지 연재소설

by 시오


[연재소설] 그녀의 식당 - 보리차 & 불고기 2


그녀는 불고기를 프라이팬에 볶기 전에, 식탁 위에 수저와 함께 열무김치를 올려두었다. 열무김치는 하얀색 접시에 담겨 나와서 그런지 유난히 더 푸르러 보였다. 마치, 끝나버린 여름이 남겨져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원래 반찬을 많이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혜자를 위해 된장국을 준비하기로 했다. 심심한 된장국이 불고기와 잘 어울릴 거 같았다. 그리고 오늘같이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날에는 더더욱. 그녀는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오늘의 갑작스러운 손님인 혜자의 안부를 물었다. 혜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혜자 역시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조금 더 편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따님 집에는 자주 찾아오시나요?"


혜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그 뒷모습의 질문에 놀라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뒷모습은 대답을 설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꾸짖을 거 같지 않았다. 그저 혜자의 느낌이 그러했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딸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말이지."


혜자는 딸이 궁금했다고 이야기를 하고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어쩌면 혜자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가족도 아니고, 같이 나이 들어버린 친구도 아니고, 그 누구도에게도 말할 수 없을 거 같았던 그 이야기를, 이상하게 저 뒷모습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치매에 걸렸다오."


그녀는 된장국을 만드느라 된장을 풀고 있던 중이었다. 휘휘 젓고 있던 그녀의 손은 잠시 멈칫하였으나, 그녀는 뒤돌아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섣부른 위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그녀는 멈추지 않고, 된장을 풀었고 혜자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우연히 알았다오. 내가 계속 이렇게 오늘처럼 길을 잃었거든. 늙으면 눈도 밝지 않고, 귀도 잘 안 들리니까, 나는 그냥 내가 늙어서 그런 줄 알았지. 그런데 매일 가던 길을 계속 헤매지 뭐요. 정신이 들어보면 처음 보는 곳에 와있고. 그러고 나면 어딘지 모르니까 또 헤매고."


혜자는 그렇게 오늘도 모르는 길을 헤매다가 그녀의 식당에 들어온 것이었다. 둘째 딸네 집은 그녀의 식당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고, 혜자는 자기도 모르게 한참을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가족들이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이제 알게 될 거 같지 뭐요. 이렇게 헤매다 보면, 가족들도 잃어버릴 거 같아 무섭기도 하고..."


혜자는 먹먹함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그제야 혜자를 바라봤고, 손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아기들에게 쓰는 가제 손수건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지금 남의 식당에 와서 뭐하나 몰라"

"괜찮아요."


그녀는 정말 괜찮았다. 치매에 걸린 사람을 한 번도 간병해본 적은 없지만, 혜자의 마음은 조금 알 거 같았다. 그녀 대신에, 혜자의 손에 들린 가제 손수건이 혜자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혜자는 그 위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눈물을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시장하시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된장국에 불고기에 넣으려고 준비해두었던 팽이버섯을 조금 넣었다. 간이 너무 짜지지 않도록 불을 줄이고, 그 사이 프라이팬에 양념에 재워두었던 불고기와 야채들을 순서대로 넣었다. 뚝딱거리던 소리는 요란스럽게 뜨거운 열기와 만나면서 취이~ 취이~ 거리는 소리를 내며 냄새도 같이 익어갔다. 그녀의 식당에는 조용히 끓고 있는 된장국과 그 옆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익고 있는 불고기 냄새로 가득 찼다. 그녀는 밥을 먼저 떠서 혜자 앞에 두었다. 불고기와 된장국까지 식탁에 올려놓고 나니, 그 모습이 생각보다 따듯했다.


혜자는 그녀의 그런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위로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 밥을 준비하던 자신의 모습이 저러했구나 생각하니,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혜자는 같이 식사를 해도 되냐고 물어봤던 그녀가 고마워졌다. 혜자의 앞에는 밥, 된장국, 열무김치, 불고기.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을게요."


혜자는 된장국을 먼저 맛을 보고는 맛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간이 심심해서 좋다고. 그리고 홍고추와 청고추가 예쁘게 올려져 있는 불고기를 한 점 집어 먹으면서도 맛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혜자는 그녀에게 나는 음식 가지고는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혜자의 밥 위에 열무김치도 하나 올려두었다. 혜자는 그것이 싫지 않았고, 식사는 천천히 계속되었다.


"식사는 잘 하셨어요?"

"아주 잘 먹었어요. 사장님이 음식 솜씨가 좋네요."


그녀는 혜자의 빈 컵에 보리차를 따라주었다. 그리고 혜자가 보리차까지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족분들에게는 빨리 이야기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혜자는 아무 말 없이 방금 마셨던 보리차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과 마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혜자는 그저 이 식당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이상한 기분이었다.


"할머님이 가족분들을 잃을까 봐 걱정하시는 것처럼, 가족분들도 할머님을 잃으면 아주 많이 슬퍼할 거예요. 어려우시겠지만, 가족분들에게 알리고 치료를 받으시면 좋겠어요."


혜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가족들이 어떤 얼굴로 자신을 쳐다볼지, 어떤 목소리로 자기에게 말을 걸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정신이 온전할 때, 자식들의 집을 찾아가 보자고 생각했다. 자식들은 모두 자기 살기 바빴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잃어버리기 전에, 그 얼굴을 조금이라도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자식들도 많이 늙었더라고. 세상 사는 게 다들 참 힘들어. 나 늙는 것보다, 자식들 늙는 게 더 마음 아파. 그래서 말을 못했어. 나 때문에 더 늙을까 봐..."


혜자의 말은, 독백에 가까웠다. 그녀의 식당은 누군가의 마음을 듣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다. 창문을 닫아 놓으면, 세상의 소리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고, 식당 안의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오직 이 공간에서 머물다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사장님 말이 맞는 것 같네요.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제는 말할 때가 온 거 같네요."


그녀는 혜자의 눈을 응시했다. 눈물이 마른자리에 눈물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혜자는 무언가 큰 다짐을 한 듯이 가제 손수건을 꼭 쥐었다. 그녀는 혜자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였으나, 혜자는 괜찮다며 극구 사양했다. 오늘 많은 신세를 졌다며, 혜자는 버스에 올라탔다. 혜자는 그제야 음식값을 안 줬다며, 창문을 열고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애초에 음식값을 받을 생각이 없었던 그녀였다.


"다음에 집에 초대해주세요. 그때는 할머님이 만들어주는 불고기를 먹고 싶어요."

"그래요, 다음에 내가 초대할게요."


기약 없는 약속이었다.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누구 한 사람 서운해서 따질 마음도 없는 그런 약속이었다. 그녀는 떠나가는 혜자를 위해 손을 흔들었고, 혜자도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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