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지 단편소설
엄마는 병원에 들렀다가 시장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병원 일이 길어지는 건지, 시장 일이 길어지는 건지 알 수없었다. 전화를 걸까 했지만 짐이 많으면 전화받기도 힘들 것 같아 하지 않았다. 비가 대차게도 쏟아지는 날이었다. 저녁식사 거리를 사러 나간 엄마는 저녁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후에야 돌아왔다. 엄마는 많은 짐을 가지고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시장을 한 바퀴 도느라 늦었다고 대답했다. 시장 한 바퀴가 그렇게 길었냐고 나는 다시 물었고, 엄마는 그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모르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나는 왜 모르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냐고 연이어 물었고, 엄마는 원래 아줌마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수다를 잘 떤다고 답했다.
밤이 깊어 몸을 뉘이기 위해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자기 전에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엄마는 내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를 안고는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해"
엄마가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왜 이러냐며 물었지만, 엄마는 그저 그러고 싶었노라 답했다. 엄마가 나가고 불 꺼진 방에서 나는 홀로 누워 오늘 있었던 짧은 사건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은 일, 그리고 나에게 사랑한다며 안아준 일. 나는 갑자기 엄마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시장을 한 바퀴 도느라, 모르는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느라 집에 돌아오는 길이 길어졌다고 애써 믿고 싶었다. 병원에 간 일이 애써 그녀를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게 자꾸 발못잡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저 그렇게 바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비가 대차게도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묻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두운 방안에 누워 한참을 눈만 끔뻑이며 그렇게 그 밤을 보냈다.
"난 너만 보면 즐거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그 모든 말들이 그저 지나가는 말로 들렸다. 하지만 엄마가 죽자, 그 모든 말들이 지나가지 않고 내게 머물렀다. 지나치지 못하고 내게 머물렀다. 다시는 들을 수없는 말이었기에 나는 그 말을 붙잡아두었다. 나는 엄마의 말을 반복 재생하듯 자꾸만 옆에 붙잡아두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난 너만 보면 즐거워."
나는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엄마..."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냄새를 훔치려는 사람처럼 나에게 코를 박고 한참을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엄마는 키가 작아 머리가 내 어깨에 겨우 닿을락 말락 했다. 넘치지 않는 물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이 내 어깨에서 찰랑거렸다.
"나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해."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던가? 내가 일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나를 한참을 지켜보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저 내가 궁금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왜 엄마가 나를 궁금해하는지 몰랐지만, 엄마가 나를 바라보면 나 역시 엄마를 바라봤다.
"너는 네 일 해. 나는 그저 이렇게 보고 있으면 돼."
"내 일 하는 거야."
"엄마 보는 게 무슨 네 일이야?"
"딸로서 할 수 있는 내 일이지."
엄마는 나를 바라봤고, 나도 엄마를 바라봤다. 그러다 웃었고, 그러다 각자 할 일을 했다. 엄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일을 했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러다 종종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가 있었다. 물을 한 잔 마시러 거실에 나갈 때면 나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마주했다.
"엄마 뭐해?"
"아무것도 안 해."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엄마 옆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같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단 둘이 아무것도 안 하기도, 단 둘이 웃기도, 단 둘이 바라보기도 하는 날을 보냈다. 그저 그런 날을 보냈다.
"사랑해"
엄마가 들려주던 많은 말들을 기억하고 싶었지만, 아주 짧은 말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아주 많은 기억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엄마와 앉아있던 소파에 앉았다. 엄마의 냄새가 아직 남아있는 곳들이 있었다. 그곳에 누워 눈을 감았다.
"사랑해"
엄마가 들려주던 그 말을 기억했다. 나를 안아주며 그 밤에 했던 그 말을 기억했다. 나는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엄마..."
엄마 옆에서 빨래를 갰다. 온 가족의 빨래가 건조대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나와 엄마의 무릎으로 옮겨졌다. 무릎에서 옷들은 펴졌다가 일정한 모양으로 개켜졌다. 차곡차곡 쌓였고, 엄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빨래를 갰다.
"병원에 다녀왔어."
나는 아무 말없이 빨래를 갰다.
"내가 많이 아프데."
나는 아무 말없이 엄마를 바라봤다.
"근데 엄마 병원에 있기 싫어. 아파도 그냥 여기 있을래."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와 내 무릎에는 개켜지지 않은 빨래가 있었다. 엄마의 표정이, 엄마의 어깨가, 엄마의 손이, 엄마의 발이, 엄마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엄마를 안았다. 비가 대차게 쏟아지던 그 날 엄마는 집에 돌아오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비가 와서, 눈물이 나서, 짐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너무 아파서, 엄마는 집에 돌아오기 힘들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엄마의 등을 쓰다듬었다. 울지 않았다. 엄마가 울고 있었으므로,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의 많은 슬픔을 담아 그 슬픔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으므로 나는 울지 않았다. 그 슬픔이 내게 닿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엄마의 등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우리의 저녁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엄마, 내 양말 봤어?"
그 말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물건을 잘 못 찾는 내가 엄마에게 늘 하던 아주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물건을 찾아주며 이렇게 답했다. '엄마 없으면 어떡할래?'
"그러게... 어떡하지?"
엄마가 없어진 날에도 나는 엄마를 찾았다. 물건을 찾을 때, 배가 고플 때,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을 때, 보고 싶을 때, 그리고 또 보고 싶을 때, 나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찾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났다.
"그러게 엄마... 나 이제 어떡하지?"
나는 그렇게 주저앉아 울었다. 나의 저녁이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