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멈춰

문은지 단편소설

by 시오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내가 한국이라면 나에게 그녀는 일본 같은 사람이다. 이런 묘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한 번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다가와도 나는 저 멀리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고,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이 손을 더 기다렸을 것 같은 순간 말이다. 퇴근길이라 도로에는 차가 일순간에 불어나기 시작했고, 마치 도로 위에 파도가 출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파도를 보는 내게 말을 걸었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해?"

문득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 정작 나는 잘 몰랐다. 한 번도 그 감정을 내 입으로, 머리로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알았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그 둘의 차이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해줘도 아깝지 않을 때,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계산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을 때..."

듣고 보니, 그녀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그 어떤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느낄 때 바로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정의는 다르니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는 사실 메인 디쉬는 따로 있다는 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도 너무 세게 말이다.

"사실, 난 지금 사는 남편과 한 번도 사랑을 나눈 적이 없어."

나는 그녀의 남편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그랬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지도 알고 있었다. 쇼윈도 부부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렇게 뜬금없는 사연이 존재할 것이라고도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가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지만, 그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하는 건 잘하지만, 알아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 사람, 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결혼생활 십 년을 앞두고 있는 부부가, 사랑을 나누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그녀에게는 정말로 사랑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그를 첫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첫사랑은 애인이자, 보호자이자, 어쩌면 그녀의 전부였다. 그녀도, 그녀의 첫사랑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문제는 그녀의 자존감이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여겨졌고 그래서 그녀의 첫사랑이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하였을 때, 가장 행복해야 하는 그 순간에 그녀는 그로부터 도망쳤다. 그의 손을 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언젠가 다시 그를 만난다면 더 멋진 여자가 되어 있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에게 떳떳하게 설 준비를 말이다.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똑같은 시간이 흘렀다. 문제는 그녀가 그에게 다가갈 준비를 하며 그 시간을 사용하는 동안, 그는 그녀를 잊기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그렇게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그의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된 그녀는 주저앉는다. 하지만, 그녀 옆을 서성거렸던 한 사람이 있었고, 그가 바로 지금의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는 첫사랑과의 모든 이야기를 그녀의 남편에게 모두 털어놓았고,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노라고 명확히 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너무 사랑했고, 아무래도 괜찮으니 자신과 시작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그리고 둘은 둘만의 계약을 하게 된다.

"결혼기간: 10년
관계는 맺지 않으며, 결혼생활 10년 후에 결혼생활을 유지할지, 아니면 멈출지 다시 결정한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벌써 9년이 되었고, 1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같이 살지 말지를 고민하는 그녀의 이유는 딱 하나.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했으며, 오로지 그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남편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 아직도 첫사랑을 간직하고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사랑과 데이트를 하면서 자주 갔던 식당에 가고 싶다던 그녀를 보며, 나는 그 식당에 당장이라도 가보라고 이야기했다.

"식당이 아직도 있는지, 있으면 아직도 맛은 그대로인지, 그리고 변한 건 없는지 한 번 가서 봐요. 그래야 알죠. 추억 속의 식당은 맛있었고, 저렴했고,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겠지만 지금도 그런지 한 번 가봐요."

음식 맛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바뀐다. 하물며 사랑이라고 오죽할까. 그녀의 첫사랑은 그녀가 나이를 먹은 만큼, 그도 나이 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한 가장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간간이 주변 지인을 통해서 첫사랑의 소식을 접한다는 그녀는, 아직도 그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어하는 것 같았다. 설렘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뭐?라는 물음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연락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약속을 잡아서 만나요. 어떻게 살고 있는 지도 직접 보고, 변한 건 없는지 그대로인지 얼굴 보면서 이야기해봐요. 그리고 그 사람도 지금 생활을 다 접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인지 물어봐요.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에게도 물어봐요. 원하는 게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아직 그 사람 앞에 서는 건 좀 부끄러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만나고 싶어."

손톱 끝까지 전해 오는 찌릿찌릿한 짜증이 몰려온다. 그녀의 망설임으로 인해, 그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도대체 몇 명이 불행해졌는가 말이다. 하물며 자신까지도 행복하지 않은 이 이야기를 왜 그녀는 끝내지도 그렇다고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는지...

"왜 첫사랑을 못 잊고 있는지 알아요? 두 사람 사이에 지금 엔딩컷이 없기 때문이에요. 엔딩컷을 찍기 전에, 지금 배우 한 명이 도망쳐 버렸고, 나머지 배우 한 명은 다른 배역을 찾으러 다른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이에요. 엔딩 크레디트까지 올리지 못한 사랑은 꼭 이렇게 미련이 남기 마련이에요.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을 찍을 수 있도록 당장 내일이라도 그 사람을 만나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조금 더 나중에..."

어쩌면 지금 그녀가 심취해있는 배역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된 그녀의 첫사랑. 그녀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그녀의 남편.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첫사랑을 찾는 그녀.

"만약 첫 사랑하고 정리하고 나면, 나는 새로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그 상대가 지금의 남편이었으면 좋겠어."

사랑을 하다 보면, 그 사랑에도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면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마지막 단어는 "행복" 일 테니까 말이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그녀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본인도 모르게 그를 안아줬다고 한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이제, 나를 받아주는 거야?"

그녀는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차갑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

제발... 누군가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이 아픈 관계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