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지 단편소설
"얼마 전에 이혼했어. 우리의 결혼 계약 기간이 모두 끝났거든."
그는 담담했다. 앞에 있는 히비스커스 차를 입으로 잠시 갖다 대고는 입술만 적신채 다시 내려놓았다. 그가 차를 마시는 방식은 늘 그랬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는 법이 없었다. 입술을 잠시 축이고는 다시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식이었다. 차를 싫어하는 사람처럼 그는 차를 마셨다.
"그럼 지금은 따로 사세요?"
"응. 이혼 준비하면서 집도 같이 정리했어."
"지금은 어디 사시는데요?"
"회사 근처. 원룸 하나 얻었어."
그에게는 아주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나와 그녀가 연락하지 않은지 2년이 좀 넘었다. 그와도 비슷한 기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사실 그와 연락을 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안부를 묻기에도 조금은 이상한 사이였다. 그녀를 통해서 만났고, 인사를 나눴고, 그녀와 나의 관계가 이어져있을 때는 자주 얼굴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니까 지금 그가 내 앞에서 이렇게 차를 마시며 그녀와 이혼한 이야기를 하는 건 어딘가 좀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 시간 괜찮아?"
그의 부탁이었다.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는 부탁. 그와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내어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분명 들어줘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해줘야 하는 이야기는, 나는 아무 일도 없으며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내 이야기는 흥미로워서는 안 되며, 그가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만 조금 그 분위기를 깨기만 하면 되는 정도의 이야기. 하지만 그가 그녀와 아니 그녀가 그와,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결혼 계약 종료를 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여기는 지금 한국이고, 우리는 너무나 한국 사람들이니까.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아직 마음속에 누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진짜로 결혼 계약을 종료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계약을 충실히 이행했고, 종료했다.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선택권이 없었는지도 몰라."
"선택권이요?"
"한때는 붙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어. 일단 우리는 결혼을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지. 10년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어. 그녀는 나를 보고 웃었고, 웃을 때마다 조금은 안심했어. 하지만 우리의 거리는 좁혀지는 듯싶다가도 멀어졌어. 가까워졌다가도 멀어지기를 반복했지. 하지만 나는 뒤늦게 깨달았어. 우리의 거리는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다는 걸.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우리에게는 넘을 수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어."
그는 다시 차를 입술에 갖다 대고는 마른 입술을 조금 적셨다. 차를 음미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식어버린 말을 내뱉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체온을 조절하는 듯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더 물어봐야 할지도 사실은 몰랐다. 어떤 말이 필요한 걸까, 어떤 호흡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일까. 나는 내 앞에 놓인 페퍼민트 차를 입술을 갖다 대고 천천히 목구멍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의 식어버린 말이 테이블에 쏟아진 차처럼 흥건했다.
"우리가 결혼 계약을 맺었다는 거 아는 사람, 지수밖에 없어."
"저밖에 모른다고요?"
"응. 사실 나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한 적이 없어. 그런데 어느 날 현아가 그러더라. 지수한테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고."
"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왜 현아가 지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막상 계약이 종료되고 나니 이런 이야기 할 사람이 없더라고. 지수밖에."
나는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지 못하고 손으로 둥글게 말아 손을 따뜻하게 했다. 왜 그가 나한테 연락했는지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사이였음에도, 그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설령 그게 누구든 그는 연락했을 터였다.
"내가 연락해서 놀랐지?"
"조금요. 하지만 괜찮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 반갑다는 표현을 쓰기는 이상하지만, 오랜만이라 반가웠어요."
"미안해. 그저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어. 우리의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 내가 처음부터 구구절절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가 그녀와 헤어져 혼자가 된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 당시가 아니라 1년이 지난 후에 나에게 연락했는지 물었다. 그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1년을 지냈다고 했다. 그가 아직 이혼하였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누군가 그녀의 안부를 물을 때, 그는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안쓰럽게 쳐다봤고, 점점 더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연락은 안 하세요?"
"가끔 문자를 보내곤 해. 밥은 먹었는지, 잠을 잘 자는지."
"답은 오나요?"
"아니. 한 번도 오지 않았어."
"섭섭하세요?"
"조금. 그런데 오히려 답장이 없는 편이 나을 때도 있어. 보내고 후회할 때도 있거든."
결혼 계약 10년. 10년 하고도 하루. 그녀는 그에게 결혼 계약 종료를 알렸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그리워할 거면서 왜 붙잡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것이 그녀와 한 약속이기 때문에 붙잡을 수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런 약속 깨버리지 그랬냐는 나의 말에, 그는 멋쩍게 웃어넘겼다. 맞다. 그는 그런 약속 깨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충실히 약속을 이행할 사람이었다.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들은 10년 하고도 한 달을 더 살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마지막 날 둘은 포옹을 했다고 했다. 길고도 긴 포옹을 끝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걸. 그는 사랑을 주었고, 그녀는 사랑을 받았다. 그들의 사랑이 끝났다. 관계가 끝났다.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사랑을 주고, 그녀는 어딘가에서 그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