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멕시코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는, 같이 유학생활을 했던 동기들의 안부와 그들과 내가 지금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였다. 약 20명 내외의 대학교 동기 및 선배들과 1년 동안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한국에서 친했든 친하지 않았든 우리는 멕시코에서 친하게 지냈다. 한국 유학생들은 얼마 없었고, 우리는 멕시코를 잘 몰랐으며, 같이 공유해야 될 정보들이 많았다. 같이 공부했고, 같이 여행했고, 같이 식사를 했고, 아무튼 같이 무언가를 많이 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1년은 빠르게 흘렀고, 유학생활은 끝이 났다. 그 뒤로 멕시코에 더 남았던 친구들도 있고, 휴학을 했던 친구들도 있고, 나처럼 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남은 학기를 채웠던 친구들도 있었다. 한 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모두 각자 선택한 진로에 따라 흩어졌고, 만나는 시간도 연락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멕시코 친구들은 그런 우리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내가 멕시코에 있는 동안 수없이 대답해야 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그렇게 흩어진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과 자주 안 만나는 거 같은데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왜 자주 안 만나는 건지, 혹은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을 받지 못했다, 혹시 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기억하지 않는 건지 등등.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이상한 현상으로 비쳤고, 그들의 당연한 질문이 나에게는 너무나 이상했다. 그리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수없이 아래와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그들은 잘 있으며, 우리의 관계는 아무 문제없고, 지금도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 보기도 하고, 연락은 주고받는다. 그들이 메시지에 회신하지 않는 이유는 더 이상 페이스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를 잊은 것이 아니니, 염려하지 말아라.”
나의 대답은 일부 그들의 의문을 해결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우리의 관계를 걱정하는 멕시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의 질문은 그대로 나의 의문이 되었다. 왜 우리가 자주 안 만나는 것이 그들에게는 걱정이 되고 질문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질문이 내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게 했다.
한국 사람들만 바쁠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이 바쁜 것은 맞지만, 한국사람들'만' 바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한국에 사는 이상 바쁘게 사는 것은 사실이니, 그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바쁠 때는 효율성을 따지게 된다.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의 효율을 내기 위해 고민하게 되고, 만나야 될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게 필요한 사람들을 찾게 된다. 나의 경우, 일주일에 2 - 3개 정도의 미팅이 있을 때가 많다. 많을 때는 그보다 더 많고, 적을 때는 아예 없을 때도 있으나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 - 3개 정도의 미팅을 하고, 최소 2명에서 10명 내외로 사람들을 만난다. 요즘에는 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누군가를 '필요'에 따라 만나다 보니, 친구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야지만 채워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고 싶다거나,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거나, 연애를 한다거나 등등의 아주 사적인 영역들이다.
"요즘은 어떤 일을 해?"
하지만 친구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줄곧 벽에 부딪히는 질문과 답변들이 있다. 바로 비즈니스와 관련된 것들인데, 일로 만나서 친구가 된 사이가 아닌 이상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인들이 없다. 그러니까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다양한 일을 모두 설명하기가 어렵고, 한 가지 일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 친구들은 그저 나를 막연하게 부러워하거나, 혹은 나의 삶이 불안정하다고 판단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아닌, 아주 일상적인 안부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소재 자체가 줄어든다. 의무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늘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사실 친구 한 명 만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내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내게 왜 친구들을 자주 안 만나는지 물어보는 멕시코 친구들의 물음에 사실은 막판엔 조금 지쳤다. (한 두 명이 아니었으므로) 사실상 나뿐만 아니라 그들조차도 서로 안 만나는 거 같은데, 내가 그 부분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비교적 자주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는 멕시코 친구들에게 비교적 자주 만남을 갖지 않는 나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질문이 됐고, 나에게는 조금 힘겨운 답변이 되었다. 마치 더 이상 그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지 않는 것이 나의 모든 불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줄곧 그 질문을 받다 지친 나는, 처음엔 가볍게 대답하던 답변을 조금 진지하게 그들에게 답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조금은 강하게 들렸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그 차이를, 그 간격을 다 설명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아주 많은 시간 일을 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8시에 시작해서 4시에 일이 끝나지.”
“보통 한국에서는 8시나 9시에 일을 시작해서 6시에 끝나. 하지만 그것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도 많지. 10시나 11시에 일을 끝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
“그래도 쉬는 날이 있을 거 아냐.”
“맞아. 쉬는 날은 있어. 하지만 그 쉬는 날에 무조건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지는 않아.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도 필요해.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
“나도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나도 일이 끝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 하지만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하고, 주말에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
“나에게는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야. 그러니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지. 게다가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렇기 때문에 쉬는 날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이건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관계가 소홀해진 건 아니야. 우리는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고 페이스북에서도 서로의 소식을 전해 듣곤 해.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많이 보는 거야.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고, 그 사이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거든.”
친구는 이해한 듯,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실 멕시코 친구들뿐만 아니라 한국 친구들 역시 종종 나에게 너는 너무 바빠서 만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 억울한 건, 내가 너무 바빠 보여서 만나자는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들의 배려 섞인 핑계가 나에게는 그저 자신들을 피해자로, 그리고 나를 가해자로 만들기에 아주 좋은 핑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내게 연락을 하고,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나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늘 내 연락만을 기다리다가 끝내는 불평만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공식적으로 일 년에 세 번 내 핸드폰에 등록된 연락처에 문자를 보낸다. 설날, 추석 그리고 연말 또는 연초를 기점으로 연락을 하는데, 매년 그렇게 세 번의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꽤 많다. 단체 문자가 아닌 개별 연락이므로 그들은 나의 배려에 고마워하기도 하고, 다음에는 꼭 보자는 말을 남기며 인사를 마무리한다. 다음에 꼭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나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사를 묻는다.
관계에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사람이 하는 활동에도 관심을 보여야 하고, 그 사람의 기쁨부터 슬픔까지 감정을 챙겨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좋은 말만 해야 하는 관계가 있기도 하다. 나이가 많아도 반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있고, 나이가 적어도 존댓만을 해야 하는 관계가 있다. 차 한 잔 만으로도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 충분한 관계가 있고, 술을 마셔야 충족되는 관계가 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움직여야 하는 관계도 있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주 많은 노력들이 내게는 요구되어왔다.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나의 다른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그 시간을 내어주기가 힘들고, 결국 관계는 무너지곤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노력은 서로가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서로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같이 공부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무언가를 많이 했던 학창 시절을 지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자연스러웠던 흐름이 이제는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노력하되 그 노력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노력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어. 각자의 삶의 방식이 있지. 관계에도 마찬가지야.”
나는 마지막으로 멕시코 친구에게 말했다. 각자의 삶. 각자의 관계. 나는 그것이 조금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더 이상 왜 자주 그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느냐는 질문을 멈춰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