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한국, 서울
Korea, Seoul
February 2016
책을 읽는 것 보다는, 듣는 게 더 편해서 좋기는 한데, 이상하게 책을 듣다 보면 그 책을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서 책을 느끼고 싶은 시간을 갖는 거지. 하지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을 읽어주던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기도 해. 마치 옆에서 '나랑 같은 책 읽네?'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역시,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듣고 읽게 되었지. 때마침 민음사에서 하는 이벤트에 당첨이 돼서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스무 권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 당장 읽고 싶은 책 스무 권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냈지.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해서도 강의를 듣곤 했어. 하지만, 모든 책들을 다 읽었던 건 아니야. 읽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거 같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평범했던 마리오 히메네스가 시대의 작가 파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게 되면서 생긴 이야기야. 여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책에 헌사나 받으려고 시작했던 일이, 평범한 사내를 시인으로 만들지. 내가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사실 그들이 나누는 '메타포' 때문이었어. 메타포가 뭐냐고? 책 속에 나오는 파블로 네루다의 예시를 빌리자면, 비가 온다는 표현을 하늘이 운다라고 바꿔 부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지.
소설 속에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메타포를 사용하여 대화를 해. 그중에서도, 베아트리스 엄마와 베아트리스가 나누는 대화가 압권이야. 베아트리스가 마리오가 사랑 고백을 하며 들려준 메타포 때문에 넋이 나가 있자, 그녀의 엄마는 마치 메타포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신랄하게 메타포를 쏟아내.
"닭대가리 같으니! 지금은 네 미소가 한 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 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로 잠시 나가 있던 파블로 네루다는 어느 날, 편지와 소니 녹음기를 마리오에게 보내서 부탁을 해. 이슬라 네그라를 거닐면서 모든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말이야. 하다못해 밤하늘의 침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녹음해 달라고 해. 자신이 사랑했던 이슬라 네그라를 그리워하며 마리오에게 부탁한 거지. 마리오는 그의 부탁을 아주 정성스럽게 수행해. 총 일곱 개의 소리를 녹음하여 보내는데, 마지막은 자신의 아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의 울음소리를 녹음하지.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거야. 마리오의 녹음 과정을 같이 따라가 보면, 얼마나 그가 네루다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를 느낄 수가 있어.
하지만,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도르 아옌데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죽게돼. 이 소설은, 실제 칠레의 역사 위에 소설가의 상상을 더해서 만들어졌어. 살바도르 아옌데와 같은 정당 소속이었고, 같은 이념을 나누었던 네루다 역시 살바도르 아옌데가 쿠데타에 의해 죽게 되면서 위험해졌어. 마리오는 네루다 곁에서 그를 지키려 노력해. 하지만, 마리오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없었어. 칠레로 돌아왔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네루다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
네루다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읊은 시는, 소설 속의 마리오뿐만 아니라 아마 독자들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 가장 시인다운 모습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지.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물결 사이사이의 고요가
위태로운 긴장을 자아내는구나.
새로운 파도가 이를 깨뜨리고
무한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그때까지
어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하려니.
쿠데타로 인하여 칠레의 민주화는 사라졌고, 마리오의 집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몇 가지 질문을 할 것이 있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정체불명의 그들에 의해서 마리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걸 암시하면서 소설은 끝나. 마리오는 일전에 시를 써서 잡지에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는 불온 잡지로 선정이 되어 정부에서 압류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거든.
마리오와 네루다가 나눈 우정과 그들의 삶이 시대의 변화와 죽음으로 인해 없어지게 돼.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할 일 없이 빈둥거렸던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게 되면서 생긴 일들이 일순간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소설이 나오기 전에 동일한 이야기를 연극, 라디오 극을 만들고 나중에는 영화로까지 만들었어.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니까, 책과 함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