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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서윤 Feb 15. 2016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리뷰] D에게 보낸 편지




한국, 서울 

Korea, Seoul 

February 2016 


D에게 보낸 편지 (Lettre a D) / 앙드레 고르 / 임희근 옮김 / 학고재


아주 오랫동안 사랑했던 너의 연인 또는 너의 배우자가 옆에 있다고 생각해봐. 하지만,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넌 알게 돼.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낼 수도, 그렇다고 그 또는 그녀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볼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너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통 우리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힘들 거야.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실망하여 그저 주저앉고 말테지. 지켜보는 게 괴롭지만,  그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테니까 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나는 현실을 부정할 뿐, 평상심이 무너져 흔들의자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기만 할 거야. 


그런데, 여기 한 남자가 있어. 나는 오늘 감히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하는, 죽음 앞에서의 어떠한 '선택'을 감행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이름은 앙드레 고르.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사상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을 했어. 그가 관심 가졌던 주제는, 실존주의, 현상학, 노동, 생태주의였지. 이쪽 분야에 대해서 지식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주제어를 듣기만 해도 어려워. 


그는 여든 살이 넘어서 그와 평생을 함께 해준 배우자를 위해서 편지를 써.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서 제대로 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고백하듯 편지를 쓰고 그 편지는 "D에게 보낸 편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돼.  


내가 겪은 것들, 우리가 함께 겪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고르가  스물네 살 때, 그보다 한 살 어린 도린을 만나게 돼. 오스트리아 출신의 앙드레 고르와 영국 출신의 도린. 나는 사람의 인연에는 우연이라는 장치가 분명 필요하다고 믿어. 하지만, 이 둘의 만남은 누군가 일부러 두 사람을 만나게 하려고, 그들의 어린 시절을 일부러 힘들게 하지는 않았나 생각될 정도지.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현실과 상상이 기적처럼  맞아떨어져, 난 살아 있는 밀로의 비너스 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당신 가슴의 진줏빛 광채가 당신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습니다. 나는 오래오래 아무  말없이, 부드러움과 힘을 지닌 기적 같은 당신 몸을 응시했습니다. 쾌락이라는 건 상대에게서 가져오거나 상대에게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 덕에 알았습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도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었습니다. 


고르를 지켜준 것은 도린이었어. 그가 무너질 때마다 혹은 깊은 생각에 잠겨 며칠씩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때에도, 그녀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지. 같은 여자로서 나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아. 진심 어린 애정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지. 그가 원고를 쓸 수 있도록 옆에서 자료 조사를 해주던 것도 도린이었어. 


하지만, 이제 고르의 차례가 왔어. 그것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지. 도린은 거미막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어. 그녀가 허리디스크로 전신 마취 수술을 받기 전에 주입한 '리피오돌'이라는 물질이, 두개골로 올라가 결국은 극심한 두통과 통증을 유발시켰지. 고르는 이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 읽고, 저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방법을 강구했지만, 하나 같이 돌아온 대답들은 그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린은 약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와도 접촉하고, 요가도 시작했지. 하지만, 2년 뒤 그녀는 암에 걸려 수술을 받아야 했어. 점점 더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되어가고 있었지. 


그들은 시골에 이사를 가서 둘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어. 하지만, 고르는 도린이 자신의 곁에서 떠나는 악몽을 꾸며 괴로워했지. 그러다 잠이 깨면, 도린의 숨소리를 살피고, 쓰다듬었어. 그녀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고르는 매번 철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거야.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2006년 6월 6일에 이 편지는 다음 생에도 함께 하자는 문장으로 끝나. 그리고 2007년 9월 22일, 고르와 도린은 자택에서 동반자살을 하지. 나는 동반자살이 멋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에게 동일한 상황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같은 결론은 내리지 못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당연히 생각한 적이 없으니 행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들은 평생을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지. 고르와 도린은 참 많이 닮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감싸주며 살아온 사람들이었어. 고르에게는 도린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있는 것이 분명 죽음보다 더 괴로웠을 거야.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포기하며,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지키지. 그들은 지키기 위해 버렸다고 생각해. 만약 나라면 지키기 위해 버틸 테지만. 


그들은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어. 고르는 아이가 있었다면 분명 도린이 아이에게 쏟는 사랑을 질투했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지.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고 말이야. 그는 그만의 사랑을 했다고 생각해.  


편지의 첫 장과 그리고 마지막 장은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돼. 하지만, 고르의 편지를 읽는 동안 첫 장에서 알지 못했던 그의 사랑이 마지막 장에서 폭발하고 있음을 느껴.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나에게는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내 인생에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물론, 너에게도. 1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아주 얇은 책이야. 오랜만에 편지가 읽고 싶다면,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거 같아. 물론, 너의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편지를 꺼내서 읽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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