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립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

by 웅사이다

20대에 수많은 사람들을 동경했다. 나는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는 항상 추구하는 바였다. 하지만 나는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내가 동경할 사람을 찾고 싶었다. 당시에 미디어에서도 수많은 동경할만한 사람들, 위대한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었고, 사람은 죽어야 비로소 그 삶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내 선택으로 공자를 정하게 되었고, 그가 30살에 자신이 갈 길을 알았다는 것은 나에게 마일스톤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었을 때는 만 30살로 미뤘고, 만 30살이 되었을 때는 과거의 30살은 현대에서는 50대 정도라는 생각으로 또 미뤘다. 그렇게 가슴에 나의 갈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문제는 나에게 풀리지 않는 문제로서 무의식에서 나를 계속 괴롭혔다. 공자의 경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한탄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현실은 어찌 보면 처참했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에 압도되었으며, 나도 전혀 예상이 불가능한 결정을 하며 살아가고, 더러는 화내고 분노하고, 더러는 답답해하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자신이 보기도 싫었다. 30살이 넘으면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더 큰 혼란이 끊임없이 몰려오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20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아직 나의 갈 길을 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도대체 그는 그 나이에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깨달아졌다. 정답을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어떨까 하고. 가야 할 길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보면 어떨까 하고. 나는 “가야 할 길에 대한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정답이 없는 질문은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가야 할 길에 대한 질문을 버리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공자와 다르고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을 살고 있다. 나의 깨달음은 나만의 것이다. 그는 내 삶의 정답지가 아니라 옆을 보면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30살 이후로 이 질문에 대해 마음이 편해진다. 어느 길을 갈지 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질문은 나만의 인생을 살아내는 것에 핵심이 있다. 내 머리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가 남았을지 모르는 내 인생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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