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by 웅사이다

종교와 철학을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며 깨달은 바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간다는 말만 있을 뿐 실재하는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도달할 수 있는 목표가 맞긴 한 건가? 현재만 바라보면 과거는? 미래는?


진정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진실 혹은 진리를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짧은 생을 살았기에 현재를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최근에 알게 된 것을 적어보려 한다.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은 마치 들판을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토끼 같아서 잡히지 않는다. 분명히 잘 살고 있다가도 더 큰 집에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지금 나와 확실히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상에 마음을 빼앗겨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항상 나와 확실히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현재를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음이다. 기쁨을 느끼는 것도 마음이고 슬픔을 느끼는 것도 마음이다. 설레는 것도 마음이고 불안해하는 것도 마음이다. 확실히 현재에 내 곁에 존재하는 것을 지긋이 바라본 적이 있을까? 그 마음 만으로 만족해 본 적이 있을까?


흔히 사랑하는 마음이라 하면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할 때 즐거운 그런 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예를 들어 그 상대방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사랑도 끝나는 것일까? 사랑하는 마음은 상대의 물리적 존재를 초월해서 내 곁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해 본 적이 있을까? 없던 것 같다.


예수가 처절한 기도를 하고 결심을 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모든 것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사랑하기로 작정한 그는 그 배신과 사랑하는 상대의 부재를 어떻게 느꼈을까? 한 편으로는 그런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그 영혼은 충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어 나는 마음의 결심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이루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관대하게 봐준다 해도 50:50의 확률이지 않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심을 하고 발을 뗀 순간, 나의 삶을 달라졌다. 그것을 알아차리면 어쩌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결심을 했던 그 순간이 행복으로 보인다.


현재 확실히 내 곁에 존재하는 것. 미래를 알지 못하고 결심했던 수많은 순간들. 그 순간들에 나는 현재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으로서 놓쳐버렸을 행복과 그 너머의 평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길을 걸어가려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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