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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Feb 29. 2024

[분리] 나는 왜 흔들릴까

우리가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짜피 지금 당장의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습관이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것.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떤 것을 해야할지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음, 그러면 어떤 생각을 해야할까? 현재 우리의 상태를 관찰해보자. 관찰은 생각의 길을 열어주는 훌륭한 길잡이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가만히 관찰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건 사실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은 더러 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관찰하는 사람은 적다. 자 그러면 관찰을 시작해볼까?


관찰을 시작해보면 누구나 우리 자신은 매일 흔들리며 살아간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제대로 관찰했다면 언제 흔들리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관찰했을 때, 크게 네 가지의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신도 공감이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1. 분위기가 과열될 때


회사에 출근했다. 일하는 것을 준비하면서 동료들과 소소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누군가 엔비디아 주식이 엄청 많이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또 다른 사람은 삼성전자의 주식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분위기는 점점 과열된다. 모두 일을 시작할 생각보다는 어떤 주식이 더 오를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바쁘게 돌아간다. 이런 분위기가 바로 과열된 분위기이다. 당신이 그 옆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원래 주식에 관심이 없었는데 퇴근할 때쯤에 증권앱을 깔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주변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각도 전이가 되지만, 감정은 더 빠르게 전이가 된다. 흥분감, 조급함, 불안감 등의 감정은 순식간에 퍼진다.   



2. 정보가 불완전할 때


친구가 주식으로 1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 친구는 아마도 기분이 좋아서 생전 사주지도 않던 소고기를 당신에게 사주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할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투자의 고수가 바로 여기에 있나 싶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친구는 잘 될 때만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투자 기간으로 봤을 때 어떤 수익률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주변에서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대부분 그렇다. 과정은 생략되어 있고 결과만 있다. 그 결과마저 특정 시기의 정보이기 때문이 시간이 지나면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서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당신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생략된다. 또한 ‘누군가 주식으로 얼마를 잃었다더라’라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성공했을 때만 이야기하지, 실패했을 때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정보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만 뒤쳐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불안감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세상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3. 자극이 과도할 때


만약 경마가 배팅을 한 다음에 1년 뒤에 결과를 알려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할까? 자신이 돈을 건 말이 실시간으로 어떻게 달리고 있고 몇 등인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중독이 된다. 경마뿐만이 아니다. 사람은 시각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눈으로 계속 변하는 숫자를 보면, 뇌에서는 도파민이 나오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숫자는 무작위로 추출되는 것과 비슷한 자극을 준다. 오르기만 하는 주식, 내려가기만 하는 주식은 우리를 자극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식의 가격이 실시간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 그 누구라도 자제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숫자가 변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과도하면 쉽게 자신의 중심을 잃어버린다.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고, 빠르게 변하는 숫자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다.



4. 공부가 부족할 때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아는 것이 충분한 경우는 많지 않다. 현대 사회는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근본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가 그 모든 것을 공부하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은 당신이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전체 그림을 모른다면 그때그때 주어지는 단서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각 단서는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것이 그 단서 밖에 없는데. 따라서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사고하게 되면서 세상에 흔들리게 된다. 행동하기 전에 공부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상황에서 나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관찰하고 알게 되면서 세상과의 분리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순간 나는 감정적이고 의존적이며, 편향적이다. 이것은 사실 본능에 가깝다. 본능에 거스르는 것은 어렵다. 오랫동안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고, 높은 확률로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내가 사람이 맞다면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는 것은 어렵고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것은 너무 쉽다.


감정적이고 의존적이며 편향적인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다행히도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되어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말한 이후로, 무의식은 많은 연구의 대상이었다. 흔히 사람의 정신은 이성의 집합체이며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상은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의식은 우리의 정신에서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의식이 무의식의 고삐를 쥐고 흔들 수 있으며 의식이 나의 마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사람은 자신의 사소한 습관 하나 의식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사람의 하루는 행동의 연속이고 그 행동 중에서 의식적으로 한 행동의 비율은 상당히 낮다.


대부분의 행동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이뤄지며, 내 행동 중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은 아주 적을 것이다. 하루 종일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계가 옆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기계는 나의 모든 행동을 기록해 놓고 하루가 끝날 때 나에게 와서 질문을 한다. 내가 한 행동 중에 어떤 행동을 의식적으로 했는지 말이다. 사소한 행동은 다 제외한다고 해도 아주 일부의 행동만 의도해서 했을 것이다. 심지어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을 통해 행동할 때도 (테슬라 주식에 내 전재산을 넣어야 해!)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나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습관이 만들어지고 인생이 무의식이 만들어낸 습관에 끌려왔다는 것을 알 때는 이미 늦곤 한다.


그렇다면 내 무의식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무의식에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세상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다. 뜬금없이 웬 세상에 대한 해석이냐고? 객관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고 들어왔던 사람은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어렸을 때 세상은 희망찬 곳이며 사람들은 모두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세상을 아주 밝게 볼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이 인식하는 세상은 아주 많이 다르다. 두 사람의 무의식에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 무의식에 어떤 세상에 대한 해석이 형성될지 선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어디서 그리고 어떤 집에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어린 시절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어른들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에 대해 배운다. 각 사물을 구분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있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익혔어야 했다. 부모님과 나는 다른 사람이며, 친구와 나는 각자의 삶이 있다. 우리가 정답이라고 들은 것도 사실 아주 짧은 시기에만 상식으로 통하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며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보다는 세상이 정답이라고 하는 지식을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곳에서 나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른이 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의 무의식에는 주입되어 온 세상에 대한 해석과 삶의 정답이 꽉 차게 들어있다.


내가 세상에 흔들리는 것은 세상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무의식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도 전에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삶에 영향을 주는 행동이 나의 의식이 아니라 나의 무의식에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어른을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의식이 무의식을 이길 수는 없다. 대신, 거리를 벌릴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벌려야 한다. 하던 행동을 멈춰야 한다. 지금 당장 하던 행동을 멈추는 것이 세상과의 분리를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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