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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Feb 26. 2024

[프롤로그] 사유의 공간으로 초대하다

이 책은 과거의 철학자들을 소개하거나 알려진 철학 이론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보다 보편적인 주제에 관한 것으로, 철학이 우리 삶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담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철학을 세상과 격리된 외딴 섬과 같이 여겼다. 세상의 중심으로 향하려는 노력 속에서 철학에 관심을 갖기는 어려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철학은 별을 바라보는 천문학과 같이, 이제는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지곤 한다. 왜 세상을 등지고 철학에 시간을 할애해야 할까? 그 시간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철학이 살면서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그렇다. 철학이 도움이 된다고, 아니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혼란스러웠던 20대에 철학은 나의 인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와 니체의 사상을 접하며 그들의 생각을 따라가려 애썼다. 솔직히 말하자면, 철학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시간을 투자한 것은 아니다. 그 시절, 동네 카페에서 철학 책을 읽던 것은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틀에 박힌 생각들이 아닌, 좀 더 독창적인 사유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스스로를 시작점으로 삼는 사고들이었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들을 때,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원초적인 형태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에 만족감을 느꼈다. 철학이 어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에,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취업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철학이 삶에서 유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참여한 대화의 주제는 특별하지 않았고, 내 의사결정들이 세계적인 영향을 미친 링컨의 노예해방처럼 거창하지도 않았다. 꿈과 현실, 커리어와 돈, 성공과 실패, 가족과 관계 등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주제와 결정이었다. 이런 일상에서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역사가 누군가에게는 전쟁이나 기술, 혁명과 해방과 같은 거대한 사건의 연속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연속이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역사는 History, 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My story,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관심은 우리의 일상에 있으며,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 또한 일상에서의 그 역할에 있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자신 안에 있기보다는 외부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자신이 따르는 삶의 정답이 정말 옳은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로는 자신만의 중심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기보다 남에게 묻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가끔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삶에서 불안은 짙은 안개처럼 깔려 있다. 나는 소수의 자신만의 기준을 가진 사람보다는 불안감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가까웠다. 나는 변화를 원했다.


대화는 때때로 일상적이고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사소할 수 있지만, 삶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그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통해 증오를 느끼기도 하고, 더 많은 이들에 대한 공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이 불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온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불안은 당신에게 목줄을 채우고 끌고 간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에, 다른 이들의 불안을 들을 때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삶에서 중심을 잡는 데 그 이상이 필요하다. 대화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공감을 넘어서 질문이 필요하다.


대화 속에서 나는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 이유를, 성과를 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그 목적에 대해 물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나 역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떤 이들은 이런 질문을 달갑지 않게 여겨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일부는 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인생의 끊임없는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고 고요히 생각했다.


‘잠깐, 내가 왜 지금까지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나 역시 이러한 순간들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부와의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나의 내면과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가는 데 바쁘기 때문이다. 한국인처럼 비교에 익숙한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수도 없이 비교당하고, 비교해왔다. 비교는 학교에서의 성적순 평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회사에서 동료들과 대화할 때도 우리는 쉼 없이 비교한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남들과의 비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대화 속에서 은밀하게 ‘이렇게 살아라’는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누군가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 어떤 직군이 연봉을 잘 받는다는 이야기, 알고 있던 동료가 어디서 결혼한다는 이야기는 나를 점점 더 작게 만든다.


비교를 통해 나는 점점 작아지고, 세상의 소용돌이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돈을 버는 것이 삶을 잘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커리어 사다리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삶의 정답’은 점점 늘어나며, 흔들림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여러 파도가 합쳐져 더 크고 위험한 파도를 만들어내듯 거세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이 흔들릴 때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것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얻으려 애쓰며 살아가는 동안, 점차 고통의 골짜기로 들어가게 된다.


서로를 비교하며, 세상에 휘둘리며, 원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신만의 기준을 자신만의 철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 필요한 것만을 추구할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철학을 어떻게 유지하고 적절히 변형할 수 있을까? 나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고 싶어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책이며, 사실 매일 흔들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인 나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까놓고 말하자면,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철학을 이론의 집합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 중에는 스스로 책을 쓰거나 이론을 만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책을 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주변의 플라톤과 같은 사람이 관찰한 것을 책으로 적은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했던 일은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의 죽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독을 먹고 죽지 않았으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문답에서 엿보이는 그만의 철학적 사유 때문이기도 하다.


철학적 사유란 소크라테스가 과거에 아테네에서 광장으로 나가서 질문했듯이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이자 시간이다. 철학적 사유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을 내려놓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시간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면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서 자신의 집을 구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독립적으로 생각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이전에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배웠던 여러 생각과 인식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의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사유의 시간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며 그 끝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 수 있다.


이 책에서는 (1) 세상과 어떻게 분리를 할 수 있고 (2) 어떻게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으며 (3) 나만의 철학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4) 그 철학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이 4가지 단계(분리, 배움, 철학, 실천)가 지속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만의 철학은 근육과 같아서 사유의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유의 시간은 도달해야 하는 목표점이 아닌 삶의 하나의 부분이다.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각 단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다.


철학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적고 세상에 공유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틀린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철학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고 우리 생활에 널리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한 문장씩 적어나갔다. 점점 세상이 요구하는 게 많아지며 개인이 느끼는 불안감과 부담감이 늘어났는데, 대화를 통해 누군가 불안감과 부담감이 줄어드는 것을 볼 때면 기쁨이 생겼다. 이 책을 통해 누군가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불안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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