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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사이다 Mar 04. 2024

[분리] 돌아가는 것을 멈추다

하던 행동을 멈추는데 다른 방법은 없다. 그냥 멈추면 된다. 더 이상 해야 할 말이나 보충해야 할 설명은 없다. 지금 당장 하던 행동을 멈춰야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이건 일종의 법칙과 같다. 과거와 동일하게 행동하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다. 다르게 살고 싶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하고, 다르게 생각하려면 하던 행동을 멈춰야 한다. 멈춰야 하는 대상이 되는 행동을 여기서는 “습관”이라고 부르겠다. 습관이라고 하면 늦게 일어나는 것이나 머리를 긁는 것과 같은 생활 습관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사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단지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주식을 하게 되는 것 또한 습관이라고 부를 것이다. 습관은 의식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습관을 멈추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생각해 보자.


사실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단지 그 대상이 앞에서 말한 작은 범위의 습관이라는 것이 우리가 말하려는 것과 다른 점이다. 삶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잡기 위해 돌아가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말할 때 다리를 떠는 습관을 멈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의미한다.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고, 다들 학점에 목을 매니까 나도 학점이 전부인 줄 알고, 학교 선배들이 공무원이 답이라고 하니까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되는 일련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작게 보면 작은 변화만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근본적이고 큰 흐름을 생각하면 다른 것이 보인다. 방금 말한 예시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여러 공통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지배를 당하고,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런 상황에 왜 처하게 되는지’와 ‘어떻게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다. 우리는 아마 태초부터 불안감을 가지고 무의식에 지배당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인류가 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의 어떤 사람들보다 큰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전보다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지만 그다지 더 행복해지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오히려 더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학생 때 이렇게 열심히 일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어떤 시대의 대학생들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갖추고 있다. 더 많은 시간을 아끼고, 더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더 다양하게 미래를 준비한다. “더 많은 것을 하는데 집중”한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개인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자신만의 철학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왜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일까? 확실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다. 왜 우리는 "하지 않는 것"이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할까? 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른 사람 혹은 뒤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두 생각은 관련이 있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달라진다. 부지런한 것은 좋은 것이고 게으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오래된 생각이며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먹는다”라는 속담을 들어오며 자라왔던 사람은 당연하게도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내가 정의했던 습관이라는 개념 안에 들어간다. ‘그래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지 않는가.


우리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 자의식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다리를 떠는 것과 같은 작은 습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일련의 흐름 혹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 패턴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법칙과도 같은 생각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삶의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배가 고프고 눈앞에 먹을 것이 있는데 먹지 않는 것은 의식적인 행동이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무엇을 지속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먹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행동이 ‘밤에 먹는 치킨’과 같은 것일까? 모든 행동을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그 지점이 우리가 다가가야 할 지점이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은 승진을 위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할 때가 아니라 적당한 시간만 일하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 생각은 우리가 더 이상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생각이 찾아온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이 맛이 꼭 좋지는 않듯이, 우리 삶에 좋은 것이 꼭 기분이 좋지는 않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서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면 좋은 출발선에 도달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릴 때 존재 목적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를 보살펴주는 가족이 있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달성하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그렇게 산다면 즐거울 수는 있겠지만 그런 삶은 독립적인 삶이 아니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다면 지속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만약 독립된 어른으로서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고 싶다면,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피할 수 없다.


공허하고 헷갈리고 혼란스러우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을 기억하라.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감정은 자연스레 찾아온다. 그 감정은 당신이 이전부터 돌아가던 대로 계속 돌아가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기계만이 기계가 아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 기계는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혼란은 피할 수 없다. 혼란스럽고 두렵기 때문에 용기라는 좋은 덕목도 생겨난다.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여러 개의 일을 동시에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하지 않는 것”은 거의 악덕과 같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돌아가던 것을 멈추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전과 동일하게 행동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살 수는 없다. 이전과 다르게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던 행동을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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