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니아연대기라는 소설을 방학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한때 부모님이 책을 빨리 읽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속독학원에 나를 보냈는데 그 학원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학원 수업의 시작은 글을 빨리 읽기 위해 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연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나는 속독에 실패했다. 눈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머리가 글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렸다. 속독 학원에서 속독에 실패하고 정독가로 학원을 나오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빠르게 읽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두꺼운 나니아연대기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면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생각난다. 독서에 투자한 시간이 얼마인지, 그에 따른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소설 그 자체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들과 함께 모험하고, 두려움과 용기를 느끼고, 마치 친구들인 것처럼 응원하게 되었다. 나니아연대기를 읽은 시간은 미래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더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었을까? 더 좋은 회사에 가게 해주었을까? 가능성은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영향은 아주 적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즐겼다. 무용하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나면 그 생각으로 인해 나와 세상을 판단한다. '유용하다. 생산적이다.'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온 이후 나는 나의 많은 행동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생산적이다라는 표현이 과연 사람에게 쓰던 표현이 맞는지 의아하다. 나는 나를 마치 미래를 위해 투자된 돈이나 공장에서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기계와 같이 취급을 한다. 시간이 흘러 이 생각이 나를 생산적으로 만들지는 몰라도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도 나는 내가 생산적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할 때는 결과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는 과정의 가치를 축소한다. 과정과 결과는 다른 측면에서 삶에 영향을 준다. 차마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대신, 그 결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만약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이 결과라고 하면 결과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해진다. 내가 무엇을 결과라고 생각하는지는 나의 하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연결된다.